• 최종편집 2024-03-03(일)
 

어느 조간신문에 암울한 기사 내용이 실렸다.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57%)는 답이 “태어나고 싶다”(43%)보다 앞섰다.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답은 20대가 60%로 가장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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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나눈다는 것이 고전의 매력”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과도한 경쟁과 치열한 입시, 스펙 쌓기 등으로 응답자의 70%가 한국은 공정하지 않고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서도 서민들은 구름 낀 볕뉘조차 쬐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픈 마음을 다독여줄 고소설과 고소설도가 있었다. 



서민들의 착한 친구, 고소설


어른들은 항상 입버릇처럼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는 이야기를 달고 산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이런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겠는가. “옛날이야기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못 박아 버리고 관심조차 갖지 않으니 말이다. 


“알고 보면 고전 문학에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정말 소중한 작품인데 사람들이 잘 읽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반인을 위한 책을 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지금이야 콘텐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였고 이야깃거리가 다양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선비들은 여러 마을에 책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누구라도 소설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누가 썼는지도 몰라요. 대부분 억눌려온 사람들이 글을 썼죠. 세상의 쓰임을 받지 못해 우울한 마음을 밖으로 표출한 것이 소설이 된 거죠. 대부분의 민간인도 그런 사람들이었기에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자신하고 소설 속 주인공을 동일시하면서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었죠.”



할머니에게 듣던 재미있는 이야기 


저자는 경기도 화성의 작은 마을 출신이다. 그가 고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 한학을 했던 큰할아버지와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주시던 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듣는 옛날이야기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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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에는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 등 다양한 이야기와 그림이 담겨 있다. 실제로 심청전 이야기의 한 부분을 담은 병풍그림에는 “효녀 심청이는 몽중에 수정궁에서 모친 상봉”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병풍을 보고, 흥미가 생기고 내용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고소설도를 자세히 보면 꿈을 꾸는 것처럼 말풍선 안에 그림을 그려 놨다. 꿈을 그렸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오늘날의 만화 기법을 찾을 수 있어서 즐거움을 더한다. 



다의성과 창의성을 지닌 고전의 현대적 활용


그는 고소설도의 매력을 “잘 그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을 읽고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누구나 자유롭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고소설도는 감상의 박물학이기에 소설독서, 제화비평, 그림, 학문의 실용성 등 문자 예술과 조형예술의 흥미로운 만남이란 점도 다루고 있어요. 문자라는 코드를 그림으로, 조각으로 각종 조형예술로 바꾸어간 고소설도는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디지털 매체 환경의 변화에 우리 고전문학을 활용해, 상상력과 창조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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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고소설도는 ‘고전의 현대적 활용’이란 시간성까지 이어지는 다의성과 창의성을 지닌 독서예술교육매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고소설도는 현재 그 윤곽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수장고나 박물관 지하창고에 갈무리됐거나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것도 한 이유지만, 그보다 연구자의 부족이 더 큰 이유다. 


“이 연구를 하려면 발품을 족히 팔아야 해요. 실제로 고소설도의 사진 촬영을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기 때문에 책을 준비하는데 4~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는 ‘고전을 읽고 쓴다’는 ‘고전독작가’라 자칭하며 고전의 현대화에, 그것도 문헌을 찾아 현대적인 변용에 애쓰고 있다. 요즘 현대인들은 ‘불안’에 시달린다. 마음껏 청춘을 즐겨야 할 대학생들까지 취업을 위해 엄청난 양의 공부와 스펙 쌓기에 정신이 없다. 이는 사람의 관심을 받고, 떳떳한 사회인이 되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매우 피곤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무조건 대기업에 들어가 행복을 찾으려 말고, 지금 내 옆에 있는 행복을 찾아야 해요. 지금 자신의 생활을 만끽하는 거죠. 옛 선현들도 다 했던 말씀이에요. 고전만 잘 읽어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요.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충분한 가르침을 주는 거죠.” 


우리는 자꾸 옛것에 대한 중요성을 잊고 살아간다. 우리의 것을 더 많이 제대로 알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면 고전이 정말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고전독작가로 읽고 쓸 예정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의 책을 읽고 ‘이렇게 살아봐야

겠다’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누군가에게 혜안을 주는 책, 상업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책을 만들기 위해 그는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포토그래퍼. 권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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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고 쓰는 고전독작가, 간호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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