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5(목)

삶의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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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이은희, 고지호 부부의 행복 산책
    캠퍼스 커플로 오해하기 딱 좋은 유쾌한 동안 부부. 심지어 임신 7개월을 보내고 있는 예비 엄마, 아빠라는 사실은 더욱더 믿기 어려울 만큼 귀여운 부부이다. 부부는 대전의 카이스트 유성캠퍼스에서 무수한 낙엽 위로 즐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늦가을이 주는 정취를 만끽했다. 모든 사람을 시인으로 만드는 계절,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들이 가득한 늦가을의 정취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풍경 속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가 함께 있다면 작은 가슴에 넘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카이스트 유성캠퍼스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이은희, 고지호 부부, 지금 신나게 태동하고 있는 아기와 함께 다시 돌아오지 않을 늦가을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사랑은 서서히, 그리고 잔잔하게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 애견 미용에 관한 일을 하고 있던 은희씨. 무언가를 만지고 고치는 일을 좋아해 오랜 기간 전자제품 서비스직에 종사해온 지호씨. 전혀 다른 분야에서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온 두 남녀가 은희씨의 후배 소개로 첫 인연의 실타래 양쪽 끝을 잡았다. 하지만 그 인연의 실타래는 ‘운명’이라는 이름 뒤에 잠시 가려져 있었고, 두 사람은 인연의 상대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 봤을 때, 제가 생각하던 이상형과 너무 달랐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거절했죠. 그런데 이 사람도 저에게 호감이 없었어요. 그때 제가 너무 말랐었는데, 이 사람의 이상형은 통통한 여자였다는 거예요.” (은희) 평소 꿈꾸던 이상형을 찾아 후배의 소개 자리에 나갔던 두 사람, 자신의 이상형과 거리가 먼 서로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우연히 소개를 해줬던 은희씨의 후배와 지호씨의 후배가 서로 관심을 표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네 사람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많이 생겼고, 서로 대화를 많이 할 기회가 생겼다.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서로 코드가 잘 맞더라고요. 제가 영화 보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이 친구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평소 세상을 살아나가는 가치관도 비슷했어요. 미련을 두지 않고 ‘현재를 즐겁게 살자’가 저의 가치관이거든요.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도 무척 비슷했어요.”(지호) 꿈꿔왔던 이상형과 맞지 않아서 서로를 거절했었지만, 알고 보니 무척 닮은 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함께하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누군가와 한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면, 나를 닮은 당신이면 좋겠다 싶었다. 사랑의 열매, 우리 아기 곶감이 두 사람에게 ‘부부’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그리고 5개월 뒤 부부에게 하늘의 선물, 아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제가 꿈을 꾸었는데 할머니 세 분이 너무 예쁜 곶감을 저에게 주시더라고요. 꿈이 무척 또렷했어요. 그리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곶감 꿈이 태몽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아기의 태명을 ‘곶감’이라고 지었어요.”(은희) 지호씨는 곶감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기쁘고 반가웠다. 구체적으로 자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었지만, 빨리 아빠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터였다. 은희씨도 행복한 마음으로 곶감이를 맞았고, 이제 곶감이가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매일 곶감이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줘요.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특별한 태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와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거나, 조용한 곳을 산책하곤 해요. 자연스럽게 태교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지호) 곶감이에게 매일 태담을 들려주는 자상한 남편인 지호씨는 임신한 아내를 최대한 배려하고, 행복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임산부는 손, 발이 자주 붓잖아요. 남편이 마사지를 굉장히 잘하거든요. 틈날 때마다 마사지를 해주니까, 저도 좋고 곶감이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은희) 현재 임신 7개월째인 은희씨,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지만, 늘 아내를 배려해주고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남편 때문에 마음만은 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신 초기에는 곶감이에게 바라는 게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로 바뀌더라고요.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거요. 엄마 배 속에서 잘 있다가 건강하게 나와 주는 것. 그리고 태어나서도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에요.”(은희) 2월 17일이 곶감이의 예정일인데, 아내의 생일과 똑같다며 신기해하고 곶감이를 설렘으로 기다리는 지호씨. 아빠로서 앞으로 어깨가 무거워지겠지만, 곶감이를 생각해 더욱더 열심히 살 각오를 전한다. “곶감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매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가 되길 바라기보다 어떤 부모가 돼 줘야할지 더 고민하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지호) 내년 가을이 되면 곶감이와 함께 산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엔 더 푸르고 깊은 하늘에 예쁜 단풍들이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부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그날을 꿈꾼다. 포토그래퍼. 권오경
    • 삶의단편
    2023-07-22
  • 치과의사에서 가수로 변신한 닥터황의 ‘넌 달라’
    한 가지 직업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능력도 있고 욕심도 많은 재주꾼들. 그런 이들은 자신이 현재 일하는 분야를 기반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도 있다. ‘끼’가 넘치는 치과의사, 닥터황을 만났다. 닥터황은 치과의사이자 가수다. 2006년에 <레이디>라는 곡으로 정신 데뷔한 중고 신인. 본명은 황병기. 경기도 닥터황치과의원의 대표원장이다. 치과전문의로 열심히 살아온 닥터황은 2018년 5월에 두 번째 앨범 <4차 산업혁명>을 선보였다. 치과전문의와 가수로서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는 닥터황의 변신을 담았다. 가수의 꿈을 꾸다 Q 치과전문의로서 가수를 하게 된 동기는? 대학 입학 전, 선배 소개로 통기타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린 나이에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치대에 진학하면서 대학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라이브 카페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대학 졸업 후 미련이 남아 다시 라이브 카페를 찾아 한동안 노래를 불렀다. 당시 꽤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선배는 내 독특한 음색이 개성 있어 좋다고 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개성을 높이 사준 거 같다. Q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꿈꾸었을 것 같은데? 사실 그 부분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의사의 삶과 가수로서의 인생 둘 다 나에게는 적성에 맞았다. 그러다 결국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로 했다.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서 노래에 대한 미련을 거두고, 현실에 충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았다. Q 그렇게 꿈을 접었는데 어떻게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었나? 가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워낙 음악을 좋아했고 개인적으로라도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러다 2006년 대한치과의사협회와 같이 ‘333 치아송’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 곡은 올바른 양치 문화를 전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직접 작사·작곡하여 노래까지 부르고, 교육용 영상도 만들고 하면서 가수에 대한 꿈이 되살아났다. Q ‘333 치아송’을 들어보니 가사와 멜로디가 쉽고 재밌다.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건강 교육 자료로 인기가 좋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했는데, 그렇게 다양한 계층이 좋아하는 가수는 흔치 않다고 하더라(웃음). 구강 건강 노래를 하면서 한때 직업적 선택으로 갈등했던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치과의사로서는 물론 가수로서도 뿌듯하고 보람찼다. 내 노래가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Q 2006년 ‘레이디’라는 곡으로 정식 데뷔했다. 앨범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333 치아송’은 교육용 캠페인송이었다. 그러다 본격 성인 노래를 만들려고 하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원래 연예계 인사도 아니고, 치과의사다보니 인맥도 별로 없었다. 앨범도 자비로 만들어야 했는데, 다행히도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주었다. Q ‘레이디’라는 곡은 상당히 분위기 있고 감미로운 곡이다. 훌륭한 뮤지션들이 참여해주었다. 뮤직비디오도 찍었는데 이파니 씨가 참여해줘서 화제가 되었다. 이파니 씨의 섭외에 대해서 다들 궁금해하는데, 이파니 씨가 치료를 받으러 내 치과에 온 적이 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출연 제의를 했고, 이파니 씨가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가수 인생 2막을 열다 Q ‘넌 달라’는 어떤 곡인가? 레게풍에 살짝 트롯을 입힌 곳이다. ‘레이디’와는 달리 상당히 신나고 재미있는 노래다. 흥겹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다. Q 레코딩할 때와 무대에 섰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 많은 뮤지션이 참여하는 레코딩 작업은 쉽지 않다. 내 목소리가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다. 작업이 끝나고 듣는 완성된 음악은 언제나 감동이다. 그에 비해 무대는 신이 난다. 관객과 호흡할 수 있어서 좋다. 무대는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Q 치과의사로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열린치과의사회 소속으로 안국동 노인복지센터, 서울역 다시서기센터 등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해오고 있다. 특히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한 치료 봉사는 보람이 있다. 흔히들 치과의사와 가수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가수의 삶은 치과의사로서의 삶의 연장선에 있다. 치과의사가 신체적인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면, 가수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사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나에게는 모두 똑같다. Q 치과의사이자 가수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난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아주 작은 무대도 찾아간다. 내가 무대에 설 때 “여러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힐링하러 온 닥터황입니다”라고 소개한다. 단 한 명이라도 내 노래를 원한다면, 어디라도 찾아간다. 그들에게 즐거움과 미소를 돌려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닥터황의 새로 나온 앨범을 선물 받았다. 어느새 닥터황은 치과의사 황병기로 돌아가 진료준비를 하고 있었다. 닥터의 변신, 그의 노래만큼 멋진 치료를 기대하며 치과를 나왔다.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닥터황치과의원
    • 삶의단편
    2023-06-25
  • 치과의사에서 가수로 변신한 닥터황의 ‘넌 달라’
    한 가지 직업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능력도 있고 욕심도 많은 재주꾼들. 그런 이들은 자신이 현재 일하는 분야를 기반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도 있다. ‘끼’가 넘치는 치과의사, 닥터황을 만났다.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닥터황치과의원
    • 삶의단편
    2023-06-25
  • 유준상 할아버지의 일기장 ‘특별한 것 없는 기록, 뜻 깊은 인생’
    유준상 할아버지의 일기. 그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기록이다. 무언가를 증명하지도 않고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도 없다. 하지만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간 60여 년의 인생에는 그 세월을 이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다. “이때까지 산 것이 큰 영광이고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마음이 흡족합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농업을 주로 했으나 이제는 농지 대부분을 한 가구가 경작하는 이곳에 축제 분위기가 감돈다. 평생을 고창에서 살아온 성계 (成溪) 유준상 (90세) 할아버지의 구순잔치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모정을 지키는 거목도 반백년을 살아왔다고 하니, 유 할아버지에 비길 바가 아니다. 백세시대에 구순잔치가 대단한 화젯거리는 아니겠지만, 60여 년이 넘은 세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왔다는 일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인의 자서전이자 일상의 역사서를 슬며시 들춰봤다. 금전출납과 일상 위주로 기술 유 할아버지도 본인이 언제부터 일기를 써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창고에서 꺼낸 구두상자 2곳에는 60여 권의 일기장이 들어있다. 일 년에 한 권씩이니 60년이 넘는 세월의 기록이 모아져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일기장은 1954년으로 거슬러 간다. 어찌 보면 6.25 전쟁 이후의 근현대사가 다 모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책 속에서 우리가 배웠던 역사와는 다르다. 지극히 개인화된 일상이다. 밭에 고추씨를 뿌리고 토끼가 교배하고 옆집 최 씨가 꿔간 2천원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최대한 육하원칙에 맞춘 객관적인 사건 위주로 기술되어 있고 그때마다 사용된 지출내역이 함께 적혀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 62년을 써왔다. “문사일과 집안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기록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잖아요. 잊지 않으려고 쓰던 것이 습관이 돼서 계속해오고 있어요. 그래서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은 일기장을 꺼내보곤 해요. 주변에서도 경조사나 농산물의 시세, 확인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한테 물어봐요. 그때가 언제였냐고. 그렇게 연도별로 찾아보는 것이 재밌어서 취미로 일기를 쓰고 있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누런색으로 변색된 일기장을 펼치면, 묵은 종이 냄새 속에서 ‘그날’에 대한 기록이 드러난다. 지금으로써는 체감하기 어려운 당시의 물가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사건들도 있다. “그때그때의 수입, 지출, 잔액을 기록해요. 그렇게 일 년을 하면 총수입과 지출이 나오죠. 이를테면 가계부 같은 기능인데, 주변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일일이 다 적으니까요. 왜 그런 것을 적느냐고 언쟁할 때도 있습니다(웃음).” 유 할아버지의 일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가족에 대한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둔 유 할아버지의 일기장에는 자녀들이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개인의 일기인 동시에 가족 구성원들의 성장기이다. 60권의 일기를 넘기다 보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어떠한 인생도 불행만 또는 행복만 지속되진 않는다. “구순을 졸수(卒壽)라고 해요. 인생이 다 끝났다는 이야기지요. 이 때까지 산 것이 큰 영광이고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마음이 흡족합니다. 우리 나이에는 소망이나 후회라는 게 달리 없어요. 자녀들이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이지요. 다만 슬펐던 것은 부모 돌아가실 때가 슬펐고, 내가 예순둘에 상처 (喪妻)했는데, 그때가 슬펐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역사적인 해이지만, 유 할아버지의 일기장에는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다.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유 씨는 아내의 난소암 소식을 전해 들어야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가장이 그렇듯, 유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살가운 다정한 남편은 아니었다. 그가 가진 자상함이란 소화가 안 된다는 아내를 위해 읍내에서 소화제를 사다 주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아내는 암 말기였고 모든 병원이 아내의 수술을 거부했다. 유 할아버지는 아내를 기도원에 입원시키고 기적을 바랐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인생이 그렇듯 기적은 뜻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계속 일기를 쓸 겁니다. 일기를 쓰면서 배우고 반성하는 점이 많아요. 이 일기가 자녀들이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진. 정종갑
    • 삶의단편
    2023-05-14
  • 유준상 할아버지의 일기장 ‘특별한 것 없는 기록, 뜻 깊은 인생’
    유준상 할아버지의 일기. 그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기록이다. 무언가를 증명하지도 않고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도 없다. 하지만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간 60여 년의 인생에는 그 세월을 이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다. △ 유 할아버지의 1954년 일기장. △ 정읍 아산 종합병원(1988년 4월 28일), 서울적십자병원 (1988년 5월 3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 (1988년 5월 25일)을 돌며 검사를 받고 아내의 암을 치료해보고자 하지만, 수술을 받기에는 아내의 병환이 너무 깊어진 상태였다. 유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1988년 5월 25일 포천의 할렐루야기도원에 아내를 입원시킨다. 그리고 아내는 1988년 6월 12일 오후9시 10분에 숨을 거둔다. △ “어제 저녁에 비가 약간 옴. 바람도 붐. 병원 앞길 사쿠라꽃이 활짝 핌” (1988년 4월 18일). 아내의 병세가 호전될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전 날. 뜬눈으로 병실에서 밤을 새우고 병원을 나서니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 “무장간첩 두 명을 사살했다함” (1996년 9월 9일). 텔레비전에 나온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 “양말 2족 1,000원, 설탕 2봉 3,800원, 미원 1봉 1,600원” (1988년 2월 3일). 당시의 물가를 가늠케 한다.
    • 삶의단편
    2023-05-14
  • 우리 주변의 꽤 쓸만한 10분 문화
    10분은 자투리 시간처럼 아주 작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 효용가치에 대해 잘 모르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안에 삶의 지혜와 비밀이 숨겨져 있다. 10분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자. 10분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범주도 다양하다. KBS 수요기획에서 펴낸 <하루 10분의 기적>이란 책을 보면, 하루 10분만 투자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한다. 쉬는 시간 10분을 이용해 내신 1등급을 이뤄낸 여고생과 10분의 휴식을 통해 뇌를 쉬게 하는 방법, 10분의 스트레칭으로 굽었던 척추를 제자리로 돌리는 등 많은 일들이 가능하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인 제임스 가필드(1831~1881)는 고학하던 시절, 우등생이었던 친구가 항상 남들보다 10분 더 수학 공부하는 것을 보고 그 친구보다 10분 더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보다 좋은 수학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교훈 삼아 남들보다 10분을 더 가치 있게 쓰는 생활을 습관화해서 교사, 변호사, 군인, 정치인 등으로 두루 성공을 거두고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0분을 이용하라. 이것이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비결이다”란 말을 남겼다. 2014년 한국에서는 <10분>이란 영화가 개봉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한국 사회 현안을 소재로 만든 이 영화는 인턴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 청년의 고된 현실을 다루고 있다. 정규직으로 올라서기 위해 10분 안에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영화적인 설정이지만,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하는 우리에게 10분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순간이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2013년 여름부터 매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청소년 10분 집중 명상’은 공부가 즐거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진다는 모토를 걸고 진행되는데, 자아존중감과 학습효과를 높이고 배려심과 협동 생활을 고양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본 행사는 매해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 우울증과 스트레스 해결법 등 당면한 청소년 문제를 10분 집중 명상으로 극복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하루 10분으로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들의 해결점을 찾고 있다.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려면? ▶ 10분 일찍 일어나세요. 무병장수하고 싶다면? ▶ 음식을 10분 더 잘게 씹어 먹으세요. 건강하고 싶다면? ▶ 하루 10분만 걸어보세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면? ▶ 10분간 칭찬하세요. 업무에 자신감이 생기려면? ▶ 10분 일찍 출근해보세요. 서로 화목하게 지내려면? ▶ 10분만 화를 가라앉히세요. 엔도르핀이 넘치게 하려면? ▶ 10분간 스킨쉽 하세요. 걱정과 염려로부터 벗어나려면? ▶ 10분간 생각을 멈추어 보세요. 스트레스를 풀려면? ▶ 10분간 재미있는 일에 몰입하세요. 행복한 마음을 가지려면? ▶ 하루 10분 쾌활하게 웃어보세요.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 108배를 10분씩 나눠서 해보세요. 하루를 잘 마무리하려면? ▶ 자기 전 10분간 하루를 정리해 보세요. 하루 10분, 한 달이면 300분 하루 10분 기도하는 사람은 한 달 300분을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 된다. 하루 10분 덕담하는 사람은 한 달 300분을 덕담하는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하루 10분 험담하는 사람은 한 달 300분을 험담으로 낭비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하루 10분으로 생활이 바뀌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불행했던 삶도 행복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의 삶은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 주변에 꽤 쓸 만한 10분 문화. 둘러보면 얼마든지 있다. 참고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라이센스 구매
    • 삶의단편
    2023-04-25
  • ‘해녀ʼ라 쓰고 ‘어머니ʼ라 읽는다, 제주 바다의 어머니 ‘장광자’ 해녀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바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 제주의 지킴이, 해녀. 그들은 오늘도 숙명의 자락을 움켜쥐고 깊고 푸른 바다에 뛰어든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희미한 숨비소리를 토해내는 그들을, 우리는 ‘해녀’라 쓰고 ‘어머니’라 읽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섭지코지 해안과 성산일출봉의 절경이 어울린 자그마한 어촌마을에는 일렁이는 제주 바다의 파도를 얼굴에 새겨 넣은 이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 장광자 씨는 일흔의 나이에도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다. 장 씨는 20여 년간 제주 해녀 회장직을 맡았으며, 위대한 해녀로 선정되어 국립 해녀 박물관에 석고상이 놓이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족관인 ‘아쿠아플라넷’에서 해녀 물질 공연을 하며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 해녀는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주가 해녀의 생성지다. 그래서 해녀는 우리의 전통과 얼을 계승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해녀는 제주의 힘겨운 자연환경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제주는 회산회토로 이루어진 섬이기에 농사를 짓기에 힘겨웠고, 내륙과는 떨어져 있어 기득권의 수탈과 정치적 차별이 심했다. 이러한 제주에 많은 것이라고는 바람과 돌 그리고 바다를 지켜온 여인들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를 삼다도라 불렀다. 제주의 바다는 제주를 척박한 유배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제주도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연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러한 바다를 배경으로 제주의 여성들은 물질을 해야 하는 운명에 순종하며 대물림과 같은 해녀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운명의 마지막 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해녀다. “해녀가 되는 데에는 이유 같은 게 없어. 그냥 해녀로 태어난 거지.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물에 들어가서 미역도 채취하고, 수영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녀가 돼가는 거야. 그러면서 바다는 대대로 내려오는 생활 터전이 되는 거지.” ‘물 알 삼 년, 물 우이 삼 년(물 아래 삼 년, 물 위에 삼 년)’. 대부분의 삶을 바다에서 보내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표현하는 제주 속담이다. 해녀들의 녹록치 않은 인생살이, 생존을 위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그이들의 삶은 제주의 쪽빛 바다에 그대로 녹아있다. “일흔에도 물질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렇게 나이 든 편도 아니야. 우리 마을에는 여든이 넘은 언니들도 많아. 보람 있고 좋으니까 하는 거지. 그 나이 먹고도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물질해서 모은 돈으로 밭도 사고 자식들 공부시켜서 대학도 보내고, 그리고 요즘은 손주들 용돈도 줄 수 있고. 바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청정 바다의 파수꾼이자, 바다를 품은 어머니 해녀는 특별한 전문직 여성이라기보다는 물 때에 맞추어 으레 바다에 나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동네 여자에 가까웠다. 육지 여성과 다르게 제주 여성은 농사일에 더해 바다를 상대로 강도 높은 노동을 견디며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삶이 궁핍했던 시절, 제주 해녀들은 제주의 깊고 푸른 바다를 별다른 장비도 없이 드나들었다. 이 모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물질하는 해녀들의 생활력은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다. “우리 어머니는 10남매를 낳으셨어.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동틀 무렵이 되면 물질을 하러나가시고, 맏이가 아이들을 돌보곤 했지. 그때는 지금 같은 잠수복이 없어서 물옷만 입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얼어서 돌아가신 분도 많았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물질하는 환경이 많이 좋아진 편이지.” 장 씨는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를 알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관광객에게 제주 바다는 낭만적인 공간일지 모르지만, 해녀들에게 제주 바다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제주 바다는 평온한 상태에서는 아기자기하지만, 파도가 집채만 하게 바뀔 때는 공포의 대상이다. 해녀들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맥질하고 있다. “물질을 하다 보면 당연히 힘들 때도 많지. 수심 깊은 데서 소라나 전복을 따서 올라갈 때, 숨이 까닥까닥 넘어가는 순간이 하루 일과 중에 한두 번은 꼭 있어. 그래도 평생 해온 일이라 괜찮아. 바다에 가면 마음도 시원하고 건강해지는 기분이거든.” 장 씨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 장 씨의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제주에서 관광&레저산업인 우도 잠수함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원양어선 선장으로 드넓은 바다를 누비고 있다. “자식들이 어머니 고생한 걸 알아서인지, 해녀들의 자식들은 어긋난 애들이 거의 없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역시 말할 수 없이 효자·효녀야.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나도 여태껏 물질하며 살고 있으니 더는 바랄 게 없어.” 해녀들은 제주 바다를 지켜온 파수꾼이기도 하다. 제주 바다는 해녀들이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친환경적 조업 방식에는 전통적인 지혜가 담겨있다. 해녀들은 산소통 없이 호흡량만큼만 작업하므로 많이 채취할 수 없다. 또한, 산란기 때는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고 자라도록 보호해준다. 제주 해녀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해양 관리법’을 세월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해녀가 되기 어려워. 그리고 마을의 구역을 지켜가며 해산물을 채취해야 하지. 그래서 해녀들은 제주 바다를 자신의 주방 찬장을 열어 보듯이 훤히 알고 있지. 그러다 보니 바다에 대한 애착이 강해질 수밖에 없어. 만약 환경을 망치는 대량 어업이 생기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발 벗고 달려가서 반대했지. 그건 바다뿐만이 아니야. 무분별하게 골프장이 들어서고 자연을 훼손하는 휴양지가 들어섰을 때도 우리가 반대하고 나섰지. 그러지 않았으면 제주의 모습은 지금처럼 유지되기 어려웠을 거야.” 해녀의 얼을 계승하다 제주의 공생자이자 파수꾼인 해녀들의 수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힘든 물질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하고, 젊은이들도 힘든 물질보다는 편안한 직업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해녀가 갈수록 고령화되면서 20년 후면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제는 해녀 문화를 어떻게 보호하고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대대로 해녀를 해왔지만, 이제 해녀는 나까지로 끝난 거 같아. 딸이나 며느리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해. 또 그게 맞기도 한 거고. 우리 때야 딸 공부시킨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지만, 지금은 어디 그래. 그래도 해녀를 하고 싶다는 젊은이들 한테는 적극 권해주고 싶어. 해녀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거든. 요즘은 많은 사람이 해녀를 멋지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줘.” 해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변하고 있다. 이전의 해녀가 생계를 이어가는 어업종사자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의 해녀는 문화&관광적인 성격을 함께 띠게 된 것이다. 일례로, 제주 섭지코지에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족관 ‘아쿠아플라넷’에서는 해녀 물질 공연을 통해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해녀 물질 공연은 해녀가 바닷속에서 전복이나 소라 등을 채취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신기하고 재밌는 공연이야. 특히 요즘처럼 해녀가 많이 사라진 시대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지. 세계 각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해녀 물질 공연을 보고는 감탄을 하곤 해. 제주도는 겉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바닷속 풍경은 더욱 아름답거든. 하지만 일반 관광객이 제주 바닷속을 구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항상 아쉬웠는데, 수족관에서나마 제주 바닷속을 볼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쪽빛 제주 바다, 그곳엔 평생 바다를 지켜온 해녀가 있다. 성산 일출봉 아래 시린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자유와 고독의 물질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온 해녀. 평생 해녀였고 앞으로도 해녀일 그이들은 이제 제주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마른 땅에서는 노인이더라도, 바다에 가면 이상하게 힘이 솟아. 그걸 해녀들은 물기운으로 일한다고들 하지. 앞으로도 큰 욕심 없이 해녀로 살아가고 싶어. 팔·다리 성하면 이 일을 안 하고는 못 배기지. 그런데 만약 해녀를 그만 해야 한다고 한다면 눈물이 날 거 같아. 다시 태어나도 나는 물질하는 해녀가 되고 싶어. 그게 내 남은 꿈이지 뭐.” 포토그래퍼 권오경
    • 삶의단편
    2023-04-09
  •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시각장애 소녀의 ‘희망의 멜로디’
    KOSIS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2021년에 등록된 국내 장애인은 260만 명 가까이 된다. 그중에 시각장애인은 10분의 1 수준인 25만 명 정도다.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의 수를 생각한다면, 상당한 숫자다. 장애인구가 전 국민의 20명 중의 1명꼴이고 시각장애인은 200명 중의 1명인 셈이다. 우리 가까이 있는 장애인들. 하지만 현실은 꽤 먼 곳에 있는 듯하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1층 현관에서 취재하기로 한 이소정 양과 어머니 김하진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몇몇 아이들이 쌓인 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한 엄마는 전화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들은 연신 눈이라고 좋아하며, 손을 벌려 눈을 받으며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고 있는데, 아이가 핸드볼 골대 앞에서 멈춰 섰다. “엄마, 나 지금 어디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불안한 듯 엄마에게 물었다.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 시각장애인 학교 한빛맹학교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갖춰져 있다. 그래서 학교에는 어린 초등학교부터 덩치가 큰 고등학생까지 볼 수 있다. 건물 내부는 비교적 어둡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음악실에 다다르자 최병우 음악선생이 소정이와 그녀의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한다. 음악책과 점자책을 통해 소정이와 마주 앉은 최 선생은 여러 가지 음악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빛소리 합창단과 개인 음악 활동을 해온 소정에게 최 선생은 이것저것 과외 지도를 해준다고 했다. “점자를 통해 음악을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보이지 않기에 교재가 많지 않은 편이에요. 주로 이론보다는 실습을 통해 가르치고 어렵거나 모르는 사항은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일반 아이들하고 학습법에서 다르긴 해요.” (최병우 음악선생) 소정이가 피아노에 앉고 최 선생이 옆에 앉아 같이 건반 위에 손을 올린다. 소정이는 손의 감각에 따라 연주를 시작하고 최 선생님은 옆에서 세심하게 지도한다. 피아노를 치며 음악에 몰입하는 소정의 얼굴에 행복감이 번진다. 감정선을 따라 뭔가를 섬세하게 찾아 나가는 탐험가의 모습 같다. “보이지 않기에 청각이 예민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복도를 걷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맞히곤 합니다. 일반인들의 영역에서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청각이 발달한 아이들이 있어요. 소정이도 그런 편이고요. 음감이 좋죠.” (최병우 음악선생) 피아노 교습 후, 의자에 앉은 소정이에게 최 선생이 등 뒤에서 손으로 음계를 가르쳐 준다. 소정이는 음악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남다르다. 더불어 노래도 잘 부른다. 최근엔 고대 구로병원에서 제작한 병원학교 음반에 메인보컬로 참여했다. “아무래도 볼 수 없기에 학습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요. 하지만 교사로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보통 아이들처럼 치고받으며 놀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게 가장 가슴이 아파요. 저는 이제 6년 차 교사인데, 30년 이상씩 장애 학생들과 같이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장애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최병우 음악선생) 연주를 마친 소정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최 선생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며 마무리를 한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다. 음악이란 매개체는 얼마나 좋은 것인가?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온 소정이가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그런 모습을 걱정스레 보는 에디터와는 달리, 소정이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연신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명랑한 소녀의 모습이다. 엄마의 노래 “소정이는 전맹이 아니에요. 약맹이어서 어두운 곳에서는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어요. 오히려 빛이 있는 곳에서는 거의 보지 못해요. 그래서 소정이의 방안은 항상 어두운 상태예요. 소정이보다 더한 어둠 속에서 사는 애들이 많아요.” (소정이 어머니) 그나마 소정이가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김 씨는 감사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전맹인 아이들도 있고 더한 장애 속에서 사는 이들도 많은데, 소정은 어둠 속에서나마 조금이라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밝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있죠.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면… 그래도 소정인 오히려 밝고 명랑해요. 태어날 때부터 잘 보이지 않았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그 또래 아이처럼 잘 놀고 천진해요. 무엇보다 엄마로서 기쁜 것은 주변에서 소정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아해 주는 거예요.” (소정이 어머니) 소정이에겐 동생이 둘 있다. 동생들은 장애가 없이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소정과의 괴리감 없이 우애 있게 지낸다고 한다. 소정이 언니로서 동생들을 잘 챙겨준다고 한다. “5살 때부터 소정이가 노래와 음악을 하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욕심은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이것저것 많은 걸 하길 바라잖아요. 그러다 소정이가 2, 3학년 때 많이 아팠어요. 그때 정말 힘들고 미안하더라고요. 쉽지가 않다는 걸 느꼈고 부끄럽지만 다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소정이 어머니) 다른 아이와 똑같이 키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소정이를 일반학교에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후 한빛맹학교에 오면서 소정이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 씨는 소정이를 일반학교에도 적응이 가능한 아이로 양육하고 싶어 한다. 한빛맹학교에서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지원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넓혀 가려 노력해요. 처음에는 정말 다 해줬어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실수하더라도 혼자 해보라고 시켜요. 그럼 소정이도 짜증을 내죠. 사춘기가 오니까 가끔은 대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도 ‘우리 아이가 커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아요.” (소정이 어머니) 김 씨는 소정이와 동생 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막내가 아직 유치원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 챙겨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교회에 다니며 신앙에 많이 의지해요. 소정일 위해서 새벽 기도를 하며 위안을 얻죠. 소정이도 교회에 가면 좋아해요. 복음성가도 많이 부르고 친구들도 사귀어요.” (소정이 어머니) 그래도 마음이 답답할 때는 차를 몰고 잠깐이라도 어디에 가서 크게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풀린다고 한다.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쉽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본인은 그 고통을 숨기기 마련인데, 이들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함께 필요한 것이다. 김 씨 역시 자신의 고통을 숨기며 그 또한 엄마의 숙명이라고 여기는 점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엄마인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정이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기보다는 가슴으로 노래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울림이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하모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정이 어머니) 소정이 꿈꾸는 멜로디 소정과 김 씨와 함께 교내 도서관에 가보았다. 대부분이 점자책이었는데 아이들이 서가를 두 손으로 붙잡고 점자책을 찾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왔다. 그것은 지식을 찾아가는 고결한 행로와 같아 보였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 피아노를 치는 소정의 모습에서도 느꼈고 이 학교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 “우리 엄만 정말 좋은 엄마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아이들과 엄마 이야기를 자주 해요. 물론 가끔 제가 싫어하는 일을 시키긴 해요. 책상에서 지우개가 떨어졌는데 엄마가 찾으라고 해요. 정말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계속 시켜요.” (소정이) 소정의 말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다소의 서운함이 함께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사랑으로 바뀔 서운함이었다. 소정과 그녀의 어머니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은 강해요. 제 동생들도 강해요. 일반학교의 아이들도 강하지요. 저와는 달라요. 그걸 알게 돼요. 다르다는걸요. 그런 부분 때문인지 동생들하고도 가끔 싸워요. 화도 내고 그래요.” (소정이) 소정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고 있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소정이가 택한 길 중의 하나가 노래와 음악이다. 소정이는 고려대 구로병원 병원학교가 희귀난치질환 및 장애 환아를 위해 제작한 음반 ‘아름다운 세상’의 메인 보컬을 맡았다. 음반의 음원과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은 멜론이나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원 수익금은 전액 병원학교 아이들을 위해 쓰였다. “창작동요도 좋고요. 복음성가도 좋고요. 다 좋아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져요. 친구들하고 ‘아름다운 세상’ 녹음할 때도 좋았어요.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긴 했지만요.” (소정이)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김 씨와 소정이에게 큰 힘이 되고 그런 사랑이 모여서 소정이가 꿈꾸는 하모니를 만들고 있다. 김 씨는 소정이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기보다는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울림이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하모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정이에게 노래 다음으로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노는 게 제일 좋아요. 노는 데는 안 빠져요. 학교 동생들하고 노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런데 남자애들은 싫어요. 장난이 심해요.” (소정이) 이렇게 보면 소정이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천진한 아이다. 노는 것에 대해 들떠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아직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현실에서 더 많이 놀고 꿈꿀 나이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본 눈 덮인 교사 전경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산비탈에 지어진 이 학교가 더 넓은 곳으로 내려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한빛맹학교
    • 삶의단편
    2023-03-29
  • (편집장의 말) 유 여사의 카톡에는 무엇이 있나
    필자와 친분이 있는 타 매체사의 편집장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한탄이 쏟아진다. 오프라인 매거진 발행에 주력하던 회사에서 최근 온라인사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업무가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오늘도 편집부원들을 모아놓고 부서 인원만 해도 몇 명인데, SNS 게시물의 좋아요는 왜 항상 3~4개에 머무느냐고 핀잔을 늘어놨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이기가 업무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필자가 느끼는 어려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드는 생각이 ‘SNS에 뭐라도 하나 올려야 하는데…’이다. 그에 반해, 디지털 문명을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며 삶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이들도 있다. ‘제3의 인생’을 살아가며 소외된 소극적인 삶이 아닌 적극적인 생활 태도로 노년기를 보내는 이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디지털 문명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디지털 액티브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이라는 세대 간의 격차에 막혀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자아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재밌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고 이모티콘으로 현재의 감정을 표시한다. 사실 무슨 일이든 늦게 시작하면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로 체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약해진다. 하지만 3월호 ‘디지털 액티브 시니어’ 취재에 응해주신 노인분들 중에 ‘청춘’의 뜻에 ‘나이’를 거론하는 분은 없었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청춘은 ‘열정’과 ‘도전’ 또는 ‘삶의 의지’에 대한 문제였다. 백발의 청춘이 존재하는가 하면 20대의 노년도 존재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자포자기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불평만 늘어놓는 젊음을 ‘청춘’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2013년에 타계한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는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을 펴냈다. <약해지지 마>는 일본에서만 160만 부가 넘게 팔린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 죽기 2년 전인 2011년에는 자신의 100세 생일을 기념해서 <100세>라는 두 번째 시집을 펴냈는데, 사전 주문만 30만 부가 넘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대체로 불행했고 시집은 평범한 언어로 쓰여 있다. 하지만 ‘약해지지 마’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그녀의 말에 많은 이들이 용기와 힘을 얻었다. 노년을 자아 완성의 마지막 과정으로 생각하고 계속 배워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젊음의 샘을 가지고 사는 청춘이 아닐까. 3월호에 게재된 디지털 액티브 시니어들 역시 청춘은 고여 있는 샘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흐르는 냇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인가에 열중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들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청춘’을 산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이 먹는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 두려움에 멈춰있지 말고 마음껏 도전하고 즐기라는 것이다. 뒤늦게 스마트폰을 구입한 필자의 어머니 핸드폰에서는 수시로 단톡방의 카톡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무슨 이야기들이 오가나 하는 궁금증에 어깨너머로 살펴보면, 대게 자연과 꽃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려 노력하는 호기심과 열정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삶의 즐거운 부분들을 공유하며 공감하고 위로하며치유받는다. 디지털은 활용하기에 따라 세대 차이의 증거가 아닌, 세대를 이어주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취업난으로 청춘을 잃고, 초고령사회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에도 디지털 액티브 시니어들의 호기심 가득한 열정이 필요하다. 참고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라이센스 구매
    • 삶의단편
    2023-03-03
  • 우리가 법정스님을 기억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2월 16일(음력 1월 26일)은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 13주기가 되는 날이다. 법정스님은 가셨지만, 그의 삶은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길에 따듯한 동행이 되어주는 변택주 ‘맑고 향기롭게’ 前 이사를 만나 법정스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셨는지 들어보았다. 나누며 살아야 법정스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수평 관계로 보았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가지거나 지배할 수 없으며 베푼다는 말 또한 옳지 못하다고 했다.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우주가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눔입니다.”(법정스님) 우리는 경제가 어렵고 가난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할 때도 서민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성장의 부가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나눔 문제입니다. 산업사회가 땀이 지닌 의미를 소중히 했다면, 경제력이 넉넉해진 이제는 눈물이 지닌 의미를 헤아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흘린 땀만큼 고른 분배가 이뤄지지 못해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를 기업인과 정치인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변택주) 함께 살아야 법정스님은 더불어 사는 것을 강조했다.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는 사람이든 간에 모든 존재는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 홀로 동떨어진 삶이란 없다. 우리는 법정스님을 강원도 산속에서 홀로 살았다고 여기지만, 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셨다. 법정스님은 새가 좋아하는 조를 사서 뿌려주기도 하셨고, 겨울이면 얼어붙은 계곡물에 숨구멍을 뚫어 산 짐승들이 물을 먹도록 해주시기도 했다. “법정스님하면 ‘무소유’만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법정스님 사상의 핵심은 ‘함께하는 삶’입니다. 불이(不二)라고도 하지요. 둘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둘이 아니면 하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불이(不二)는 둘이 아니라고 해서 하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변택주) 이는 탯줄로 연결된 아이와 엄마이거나, 무선으로 이어져 있는 휴대전화와도 같다. 법정스님은 저마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바라셨다. 장애인이나 소외계층의 문제를 자신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닌 우리의 일로 생각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 그리고 내 둘레 사람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 함께 사는 지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교도 기독교도 또는 유대교나 회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입니다.”(법정스님) 제 빛깔과 향기를 내뿜어야 법정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 사람이 면 되지, 두 명의 석가모니는 필요 없다고 했다. 법정스님은 저마다 독특한 향기를 내뿜는 사회가 되기를 꿈꿨다. “사람은 저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생에 익힌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묵히거나 없애지 말고 좋게 써야 합니다. 저마다의 재능과 특성이 한데 어우러져야 건전한 우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꽃들은 제가 지닌 모양과 향기를 잃지 않고 저마다 세계를 활짝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도 저마다 제 빛깔을 지녀야 합니다.”(법정스님) 변택주 ‘맑고 향기롭게’ 前 이사는 1998년부터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12년간 법정스님의 길상사법회 사회를 맡았으며 법정스님으로부터 지광(智光)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현재는 컨설팅과 인문학 강의를 겸하면서 법정스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서로는 <법정스님 숨결>, <법정, 나를 물들이다>가 있다. 포토그래퍼. 권오경 참고도서. <법정스님 숨결>, <법정, 나를 물들이다>
    • 삶의단편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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