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새로운 것’을 요한다. 오늘의 즐거움이 내일의 시시함이 될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대중들의 안목은 높아지고 이에 맞는 창의적인 생각이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처럼이 아닌, 우리 가정처럼’
설치미술가였던 한젬마는 코트라에서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활동하며 예술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콜라보를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호서대학교 문화기획과 교수까지 겸업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그의 육아법은 ‘누구처럼이 아닌, 우리 가정처럼’이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한젬마식 육아법을 알아보자.
“육아법에 대해서는 ‘조화로움과 균형’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누구처럼이 아닌, 우리 가정처럼’이라는 생각아래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다른 엄마들처럼 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다른 쪽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요”
예술과 중소기업의 콜라보를 이끈다
제법 훈훈해진 봄바람이 불던 4월 둘째 주, 크리에이티브디렉터 한젬마를 만나기 위해 코트라로 향했다. 코트라 1층 오픈갤러리에는 누구나 마음껏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 여러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코트라가 한젬마를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영입했고, 이곳에 갤러리를 만들어 다양한 방식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시회를 오픈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미술 작가들과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함께 작업한 작품들이에요. 전시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생산·수출까지 계획하고 있어요.”
그동안 대기업과 유명 작가들과의 콜라보는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사업을 꾸려가야 하기에 펼칠 수 없었던 이런 기획을 코트라에서 무료로 진행해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게다가 해외 바이어가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박람회 자리까지 만들어주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수익이 나면 로열티를 받을 수 있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브랜드를 알리고 수출을 꾀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축제와도 같은 자리다.
“다음번 전시는 6월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기획했어요. 브라질과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데, 축구공이라든지 스포츠용품에 콜라보를 해서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에 수출하는 기업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이와 함께 정책이나 사회적인 이슈 등을 고려하면서 글로벌한 기획을 해야 하므로 내년에 있을 큰 행사들의 기획까지 미리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산다는 것
한젬마는 발상하고 기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획’이라는 부분을 한 분야에 국한 시킬 수는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자질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을 기획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기획하며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창조적 인재’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아이디어 때문이잖아요. 어느 분야건 기획이 필요해요. 예술가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보니, 매일 고민하고 발상하고 화두를 던지면서 누군가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반복되는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도전하는 것이 좋아요.”
이런 자신의 성향 때문에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사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낀다는 한젬마. 하지만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로 저녁에 지인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한다.
“본의 아니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생활해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아요.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매일 나 자신과 싸우는 중이에요. 약속이나 계획한 일에 대해 차질이 생기다 보니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에 반성하고 실망하면서 다시 시간체크를 하죠.”
이쯤 되면 ‘가정에는 소홀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앞선다. 그러나 특별히 가정생활에 달라진 점은 없다. 오히려 아침형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귀가 시간이 빨라졌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금 더 가정적인 엄마가 됐다.
“달라진 거라면 책임져야 할 약속이 더 많아진 것 뿐이에요. 그 전에는 시키지도 않았던 일을 구상하고 작업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시간 활용하는 부분만 없어졌지, 정말 바른 생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젬마’이기때문에 해 줄 수 있는 것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아이 양육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에게 ‘아이의 육아’에 대해 물으면 십중팔구 ‘꽝’ 이라고 대답한다. 한젬마는 아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저는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 업을 타고 난 것 같아요. 그래서 육아법에 대해서는 ‘조화 로움과 균형’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누구처럼이 아닌, 우리 가정처럼’이라는 생각 아래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다른 엄마들처럼 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다른쪽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요. 금요일날은 아이가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전시나 공연장을 돌아다니면서 관람도 하고 문화·예술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요. 이게 저의 생활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콘텐츠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는 ‘어떻게 하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 결과 아이가 문화·예술 분야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관에 아이를 데려갈 때도 학습으로 무엇을 얻는다기 보다는 미술관이라는 곳이 아이에게 즐겁고 신나는 곳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자꾸 무언가를 주입시키려고 하고, 테스트하려고 한다면 미술관은 아마 평생 부담스러운 곳이 될 거예요.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소통방식을 보여주고 마치 생활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물들어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요.”
교육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므로 자신의 형편에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육아법이 될 수 있다. 아이를 여러 명 낳아 키우는 집은 그 나름대로 서로 양보하면서 얻어가는 성품과 품행을 배울 수 있다. 아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 미안할 때도 있겠지만, 그 대신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엄마가 이 부분은 잘 챙겨주지 못하지만 다른 것은 함께 할 수 있잖아’라고 이야기하면서 아이에게 설명을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신기하게도 아이가 못 알아듣는다고 할지라도 설명하는 엄마의 태도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내 판단을 아이에게 그대로 주입하면 아이도 이해를 못하니까 안좋은 행동들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이해를 시킨다기보다는 사람의 성의와 정성을 보는 것 같아요.”
소통으로 만들어가는 행복한 가정
어려서부터 우리의 가정은 ‘대화의 단절’, ‘소통의 부재’ 등으로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부족했다. 가정 중심의 사회가 아닌 일 중심의 사회에서 특히 아버지의 자리는 좁기만 하다. 온전히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부분을 떠넘기고 있는 현실은 아버지의 생계에 대한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게다가 은퇴라도 해서 집에 매일 아버지가 있다고 하면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불편해서 자리를 피하게된다.
“행복한 가정이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가 바로 서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독일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왔잖아요. 사실 독일에서 지낼 때 정말 낯설었어요. 남편 회사에서 회식이라도 있다 치면 부부들이 모두 같이 참석해요.“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까지 함께 간다는 거죠. 아이들을 위한 방을 따로 만들어놓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회식을 하고 아이들은 마련된 방에서 즐겁게 노는 거예요. 밥을 먹으면서도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족들하고 수시로 대화를 나누면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해요.”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소통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아이가 사춘기라고 긴장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지 말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겪어나가야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생길 수 있다. 나쁜 일일수록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가드닝을 즐기고 있다는 한젬마. 그는 집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와 과일, 꽃을 심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자신을 위한 취미생활을 하는 그에게 어떻게 시간이 나느냐고 물었더니 “시간은 관심과 비례한다”는 이야기를 내놓는다.
관심이 있다면 시간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법.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 그는 “인생에서 더 자신감을 갖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고 말한다. 외부의 평가에 치우치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엄격해져서 주어진 일을 부끄러움이 없이 해내겠다는 그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인 듯하다.
사진. 권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