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제주의 숲, 비자림은 엄마 같다. 거대한 나무와 풀이 뒤섞인 자연에 들어가 있노라면 마치 엄마에게 안긴 것 마냥 포근하고 편안해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우리를 감싸주는 엄마 같은 숲. 뜨거운 여름날, 신록으로 가득한 제주 비자림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맨발로 걸었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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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맨발 트레킹의 시작


입구에서 숲 초입까지 가는 길은 꽤 정돈되어 있다. 이 포장된 길을 잠깐 걸어보고 비자림에 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숲 산책로를 쭈욱 걷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탐방로 입구가 나온다. 유모차와 휠체어가 갈 수 있는 짧은 코스인 송이길은 왕복 40분, 돌멩이길이라 불리는 긴 코스는 왕복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다소 길 수 있지만, 숲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는 돌멩이길을 선택해서 걸음을 옮겼다. “신발을 한번 벗어보세요” 동행한 해설사가 먼저 신발을 훌렁 벗는다. 머쓱해진 우리도 맨발로 길을 걷기로 한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나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항상 두꺼운 신발에 감싸져 있던 발이 땅에 닿는 감촉이 생소하다. 화산이 폭발할 때 퍼진 송이라는 화산쇄설물이 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어, 길은 그다지 부드럽지 않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는 피톤치드, 발아래서는 원적외선을 받을 수 있으니, 온몸으로 숲을 느끼기에 이만한 체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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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향 한가득, 웅장한 고목의 향연


숲은 비자나무의 향으로 가득하다. 쌉싸름하면서도 청량한 향이 가슴 속 묵은 공기를 정화해준다. 평균적으로 500~800년을 산다는 비자나무들이 거대하게 자신의 영역을 나타내고 있다. 


나무의 웅장함에 놀라워하며 숲을 걷다 보면, 나무에 달린 앙증맞은 도토리 모양의 비자열매를 보게 된다. 4월에 수정해 그다음 해에 열매를 맺는다는 비자나무는 9월 말이 되면 열매가 떨어진다. 이때 떨어진 열매를 먹으면 촌충을 없애주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꼭 7알씩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비자림에 있는 나무 중 약 25%만이 열매를 맺는 암나무인데, 암나무에서 떨어진 비자 열매는 누구나 주워갈 수 있다.


길은 갈수록 더 좁아지고, 숲은 그만큼 더 위세가 당당해진다. 여럿보다는 혼자. 또는 둘이서 오기에 좋은 길이다. ‘쪼르릉’ 하고 우는 두견새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그 숲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각자의 울음소리로 지저귀는 새들도 사람들의 방문이 썩 싫지만은 않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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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되어 만나요, 연리목


길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기이하게 생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두 개의 나무가 만나 하나의 나무가 되는 연리목이 그 주인공이다. 흔히 연리지로 착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해 연리지와 연리목은 다르다. ‘연리지’는 가지가 붙은 나무를 말하며, ‘연리목’은 줄기가 이어진 나무를 일컫는다. 더불어 뿌리가 이어진 나무는 ‘연리근’이라고 하는데, 희귀한 만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비자림의 연리목은 마치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손을 뻗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그 손이 첫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아이의 손처럼 한없이 부끄러워 보인다. 이러한 연리목은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져 연인들의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 연리목 앞에서 서로 한 팔을 들어 하트를 만드는 연인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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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의 터줏대감, 새천년 비자나무


비자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새천년 비자나무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더 오래된 나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새천년 비자나무가 가장 오랜 세월 동안 비자림을 지켜왔다. 새천년 비자나무의 나이는 무려 826살. 오늘 이곳을 찾은 이들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새천년 비자나무만은 오랜 세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새천년 비자나무는, 그 자체로 영험한 기운을 마구 뿜어내고 있는 듯했다. 밤이 되면, 숲의 정령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신비함으로 숲 전체가 빛나고 있었다.



포토그래퍼. 장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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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걸었소, 제주 비자림에서의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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