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갤러리 썬에서 ‘전통의 겹’ 초대전이 연 작가 김수지는 한지공예가에서 최근 그림 그리는 작가로 그 영역을 넓혔다. 오랫동안 한지공예를 하면서 그는 매번 같은 방식의 표현인 패턴이나 문양 장식에 단조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지에 그림을 추가하는 작업이었고 공예가에서 화가의 영역까지 습득하기 위해 한동안은 그림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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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가에서 그림 그리는 작가로 영역을 넓혀 가는 일이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무른다면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섞을 수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고민은 그림을 재편집해 다른 배경과 조합하는 작업도 또 다른 영역의 확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를 ‘전통의 겹’으로 잡은 데는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


“한지 작업이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풀칠해 초배를 치고, 색 한지를 바르고, 문양을 오려서 붙이고, 마무리하는 과정과 선묘를 하고 바탕색을 입히고, 1차 색, 2차 색, 색을 올리는 과정이 한지공예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이 모든 맥락이 겹으로 상통하는 거죠. 염원과 소망을 담아 운을 담아내는 벽사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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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은 유년 시절 아름다웠던 추억을 기반으로 한다. 경주 모화리에 있는 시골의 고택에서 창호지에 구멍을 내 밖을 보던 풍경, 콩기름 먹인 장판, 구들장에서 몸을 녹이면서 먹었던 고구마와 식혜, 벽장 속에 잘 숨겨져 있던 오래된 물건들, 어른들이 일하고 있는 틈에 보물찾기라도 하듯 각방에 골동품들을 찾아서 놀았던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업에 투영돼 옛것이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는 작업의 원동력, 모티브가 됐다. 


“전통공예 분야에 젊은 작가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요. 예술이 화려한 표현만 이슈가 되고 각광 받는 부분은 사실 속상할 때가 많아요. 오래된 것도 소중함이 있다는 것, 전통의 소재를 가지고도 충분히 현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일반사람들도 한지공예나 민화를 꼭 한번 배워봤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것’이라는 것이 사실 대단한 힘이잖아요. 전통의 기반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무엇을 하든 배가 될 텐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게 됐잖아요. 이제는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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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화조도, 2013

 

한지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감이 더해지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그 모습이다. 한지를 작품 소재로도 탁월한 재료라 생각하는 그는 ‘지천년 견오백년’이라는 말처럼 한지는 빛 바라면 빛 바라는 대로, 낡으면 낡은 그 모습마저도 세월의 상흔을 담은 우리의 모습을 닮아있다고 이야기한다.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모나지도 않는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동양적인 정서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요. 그래서 놓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에 비해 더딘 저의 작업은 조급함마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고의 과정이에요. 천천히 가도 나쁘지 않아요. 더 많이 담고,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동행해요. 제 작품으로 바쁜 현대인에게 노작이 주는 즐거움, 무미건조하게 흐르는 삶에 감성을 자극하고 싶어요.”


사진. 한정구

자료제공. 김수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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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작가 김수지, 전통의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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