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1256.png

 

흙길을 걷는 즐거움. 포슬포슬한 흙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경험이다. 그것이 자연과 함께라면 더욱 그 느낌은 커질 수밖에. 포천에 있는 산정호수의 둘레길을 걸으며 마음속 번뇌와 걱정을 잠시 내려놓는 건 어떨까.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 세대에게 더욱 익숙한 이름, 산정호수. 서울에서 차를 타고 2시간이면 도착하는 지리적 이점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전 데이트 및 여행 코스이다. 특히 겨울의 산정 호수는 고요하면서도 정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장소이다. 그래서일까. 호수의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속 복잡했던 사념과 걱정들이 어느새 사라진다.

 


2.png


3.png

 

궁예의 슬픔이 담긴 명성산 자락에 있는 산정호수. 산정호수 둘레길은 궁예 산책로라고도 불린다. 호수의 둘레를 굳건히 지키는 명성산이 바로 궁예와 관련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에게 쫓겨 피신 중이던 궁예가 명성산에서 끝내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궁예가 망국의 슬픔으로 통곡하자,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들도 따라 울었다고 해서 울음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명성산은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한 명칭이다. 그래서 둘레길을 걷다 보면, 궁예의 늠름한 모습을 담은 동상과 함께 관련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부여된 안내 표지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4.png

5.png

 

고요한 호수에서 만나는 그림 같은 자연 풍경

 

호수 둘레길은 편도로는 약 20, 한 바퀴를 다 도는 데에 1시간 반 가량 걸린다. 둘레길을 30분쯤 걷다 보면, 산정 호수의 깊은 속살을 만날 수 있다. 뿌연 안개 사이로 산과 호수가 만들어 내는 모습은 마치 동양의 산수화처럼 은은한 절경을 자랑한다. 안개가 만들어 내는 흐릿한 시야마저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다.

 

 

호수의 둘레길을 2/3 정도 걷다 보면, 물 위로 나무 데크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아찔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이곳을 건너는 묘미다. 데크를 조심스레 건너고 나면, 물에 잠긴 거대한 사람 형태의 철골 조각품도 만날 수 있다. 마치 물에서 갓 나오는 것 같은 사람의 모양새를 한 전시 작품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현대 작가의 조형물이 조각 공원에 모여 있어, 관광객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사본 -6.png

 

술이 익어가는 곳, 포천 산사원

 

포천은 산정 호수 외에도 들를만한 곳이 많다. 잘 알려진 포천 허브랜드, 포천아트밸리 외에도 찾아가보면 좋을 곳 중 하나가 바로 산사원이다. 산사원은 배상면주가의 대표 술, ‘산사춘의 원료인 산사나무가 모여 있는 정원이다. 이곳에는 200년 된 산사나무가 12그루 심어져 있으며, 옹기항아리에서 전통술이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산사정원은 전통술 박물관 옆에 4,000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전통술 숙성공간인 세월랑, 포석정과 같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마실 수 있는 유상 곡수, 이외에도 산사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각종 모임과 연회를 펼칠 수 있는 우곡루, VIP용 공간인 지성재, 풍류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취선각, 근대 양조장의 모습을 구현해 놓은 부안 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png

 

술 항아리가 모여 만든 아름다운 풍경

 

전통 증류주 숙성고인 세월랑, 이곳에 들어서면 커다란 옹기 술 항아리들이 일렬종대로 빼곡히 자리해 있다. 갈색빛의 옹기 항아리들이 늘어선 모습이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포천은 예로부터 일교차와 연교차가 커서 증류주를 만들기 좋은 최상의 장소이다. 증류주는 숙성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옹기독이 사용된다. 옹기는 스스로 숨을 쉬기 때문에 외부의 산소와 항아리 안의 술이 결합해 숙성된다. 일교차가 클수록 수축과 팽창 과정이 활발해져 더욱 크게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항아리들 사이로 미로같이 연결된 길을 따라 찬찬히 걷다 보니, 알싸한 술 향기가 느껴진다. 숨을 쉬는 옹기 항아리에 가까이 다가가니 미세하게 술의 향취가 전해져왔다. 술은 650ℓ의 항아리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묵묵하게 자신을 바꿔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술은 그렇게 기나긴 기다림의 과정을 거친다.

 

 

포토그래퍼 권오경

BEST 뉴스

전체댓글 0

  • 10982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겨울 호숫가를 걷다, 포천 산정호수 둘레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