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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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바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 제주의 지킴이, 해녀. 그들은 오늘도 숙명의 자락을 움켜쥐고 깊고 푸른 바다에 뛰어든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희미한 숨비소리를 토해내는 그들을, 우리는해녀라 쓰고어머니라 읽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섭지코지 해안과 성산일출봉의 절경이 어울린 자그마한 어촌마을에는 일렁이는 제주 바다의 파도를 얼굴에 새겨 넣은 이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 장광자 씨는 일흔의 나이에도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다. 장 씨는 20여 년간 제주 해녀 회장직을 맡았으며, 위대한 해녀로 선정되어 국립 해녀 박물관에 석고상이 놓이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족관인아쿠아플라넷에서 해녀 물질 공연을 하며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

 

해녀는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주가 해녀의 생성지다. 그래서 해녀는 우리의 전통과 얼을 계승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해녀는 제주의 힘겨운 자연환경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제주는 회산회토로 이루어진 섬이기에 농사를 짓기에 힘겨웠고, 내륙과는 떨어져 있어 기득권의 수탈과 정치적 차별이 심했다. 이러한 제주에 많은 것이라고는 바람과 돌 그리고 바다를 지켜온 여인들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를 삼다도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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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바다는 제주를 척박한 유배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제주도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연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러한 바다를 배경으로 제주의 여성들은 물질을 해야 하는 운명에 순종하며 대물림과 같은 해녀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운명의 마지막 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해녀다.

 

해녀가 되는 데에는 이유 같은 게 없어. 그냥 해녀로 태어난 거지.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물에 들어가서 미역도 채취하고, 수영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녀가 돼가는 거야. 그러면서 바다는 대대로 내려오는 생활 터전이 되는 거지.”

 

물 알 삼 년, 물 우이 삼 년(물 아래 삼 년, 물 위에 삼 년)’. 대부분의 삶을 바다에서 보내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표현하는 제주 속담이다. 해녀들의 녹록치 않은 인생살이, 생존을 위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그이들의 삶은 제주의 쪽빛 바다에 그대로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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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에도 물질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렇게 나이 든 편도 아니야. 우리 마을에는 여든이 넘은 언니들도 많아. 보람 있고 좋으니까 하는 거지. 그 나이 먹고도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물질해서 모은 돈으로 밭도 사고 자식들 공부시켜서 대학도 보내고, 그리고 요즘은 손주들 용돈도 줄 수 있고. 바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청정 바다의 파수꾼이자, 바다를 품은 어머니

 

해녀는 특별한 전문직 여성이라기보다는 물 때에 맞추어 으레 바다에 나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동네 여자에 가까웠다. 육지 여성과 다르게 제주 여성은 농사일에 더해 바다를 상대로 강도 높은 노동을 견디며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삶이 궁핍했던 시절, 제주 해녀들은 제주의 깊고 푸른 바다를 별다른 장비도 없이 드나들었다. 이 모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물질하는 해녀들의 생활력은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다.

 

우리 어머니는 10남매를 낳으셨어.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동틀 무렵이 되면 물질을 하러나가시고, 맏이가 아이들을 돌보곤 했지. 그때는 지금 같은 잠수복이 없어서 물옷만 입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얼어서 돌아가신 분도 많았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물질하는 환경이 많이 좋아진 편이지.”

 

장 씨는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를 알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관광객에게 제주 바다는 낭만적인 공간일지 모르지만, 해녀들에게 제주 바다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제주 바다는 평온한 상태에서는 아기자기하지만, 파도가 집채만 하게 바뀔 때는 공포의 대상이다. 해녀들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맥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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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을 하다 보면 당연히 힘들 때도 많지. 수심 깊은 데서 소라나 전복을 따서 올라갈 때, 숨이 까닥까닥 넘어가는 순간이 하루 일과 중에 한두 번은 꼭 있어. 그래도 평생 해온 일이라 괜찮아. 바다에 가면 마음도 시원하고 건강해지는 기분이거든.”

 

장 씨는 슬하에 3 1녀를 두고 있다. 장 씨의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제주에서 관광&레저산업인 우도 잠수함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원양어선 선장으로 드넓은 바다를 누비고 있다.

 

자식들이 어머니 고생한 걸 알아서인지, 해녀들의 자식들은 어긋난 애들이 거의 없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역시 말할 수 없이 효자·효녀야.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나도 여태껏 물질하며 살고 있으니 더는 바랄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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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은 제주 바다를 지켜온 파수꾼이기도 하다. 제주 바다는 해녀들이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친환경적 조업 방식에는 전통적인 지혜가 담겨있다. 해녀들은 산소통 없이 호흡량만큼만 작업하므로 많이 채취할 수 없다. 또한, 산란기 때는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고 자라도록 보호해준다. 제주 해녀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해양 관리법을 세월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해녀가 되기 어려워. 그리고 마을의 구역을 지켜가며 해산물을 채취해야 하지. 그래서 해녀들은 제주 바다를 자신의 주방 찬장을 열어 보듯이 훤히 알고 있지. 그러다 보니 바다에 대한 애착이 강해질 수밖에 없어. 만약 환경을 망치는 대량 어업이 생기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발 벗고 달려가서 반대했지. 그건 바다뿐만이 아니야. 무분별하게 골프장이 들어서고 자연을 훼손하는 휴양지가 들어섰을 때도 우리가 반대하고 나섰지. 그러지 않았으면 제주의 모습은 지금처럼 유지되기 어려웠을 거야.”

 

 

해녀의 얼을 계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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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공생자이자 파수꾼인 해녀들의 수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힘든 물질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하고, 젊은이들도 힘든 물질보다는 편안한 직업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해녀가 갈수록 고령화되면서 20년 후면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제는 해녀 문화를 어떻게 보호하고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대대로 해녀를 해왔지만, 이제 해녀는 나까지로 끝난 거 같아. 딸이나 며느리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해. 또 그게 맞기도 한 거고. 우리 때야 딸 공부시킨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지만, 지금은 어디 그래. 그래도 해녀를 하고 싶다는 젊은이들 한테는 적극 권해주고 싶어. 해녀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거든. 요즘은 많은 사람이 해녀를 멋지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줘.”

 

해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변하고 있다. 이전의 해녀가 생계를 이어가는 어업종사자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의 해녀는 문화&관광적인 성격을 함께 띠게 된 것이다. 일례로, 제주 섭지코지에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족관아쿠아플라넷에서는 해녀 물질 공연을 통해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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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물질 공연은 해녀가 바닷속에서 전복이나 소라 등을 채취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신기하고 재밌는 공연이야. 특히 요즘처럼 해녀가 많이 사라진 시대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지. 세계 각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해녀 물질 공연을 보고는 감탄을 하곤 해. 제주도는 겉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바닷속 풍경은 더욱 아름답거든. 하지만 일반 관광객이 제주 바닷속을 구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항상 아쉬웠는데, 수족관에서나마 제주 바닷속을 볼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쪽빛 제주 바다, 그곳엔 평생 바다를 지켜온 해녀가 있다. 성산 일출봉 아래 시린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자유와 고독의 물질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온 해녀. 평생 해녀였고 앞으로도 해녀일 그이들은 이제 제주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마른 땅에서는 노인이더라도, 바다에 가면 이상하게 힘이 솟아. 그걸 해녀들은 물기운으로 일한다고들 하지. 앞으로도 큰 욕심 없이 해녀로 살아가고 싶어. ·다리 성하면 이 일을 안 하고는 못 배기지. 그런데 만약 해녀를 그만 해야 한다고 한다면 눈물이 날 거 같아. 다시 태어나도 나는 물질하는 해녀가 되고 싶어. 그게 내 남은 꿈이지 뭐.”

 

 

포토그래퍼 권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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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ʼ라 쓰고 ‘어머니ʼ라 읽는다, 제주 바다의 어머니 ‘장광자’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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