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KOSIS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2021년에 등록된 국내 장애인은 260만 명 가까이 된다. 그중에 시각장애인은 10분의 1 수준인 25만 명 정도다.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의 수를 생각한다면, 상당한 숫자다. 장애인구가 전 국민의 20명 중의 1명꼴이고 시각장애인은 200명 중의 1명인 셈이다. 우리 가까이 있는 장애인들. 하지만 현실은 꽤 먼 곳에 있는 듯하다.


07-1.jpg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1층 현관에서 취재하기로 한 이소정 양과 어머니 김하진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몇몇 아이들이 쌓인 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한 엄마는 전화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들은 연신 눈이라고 좋아하며, 손을 벌려 눈을 받으며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고 있는데, 아이가 핸드볼 골대 앞에서 멈춰 섰다. “엄마, 나 지금 어디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불안한 듯 엄마에게 물었다.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

 

15.jpg

 

시각장애인 학교 한빛맹학교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갖춰져 있다. 그래서 학교에는 어린 초등학교부터 덩치가 큰 고등학생까지 볼 수 있다. 건물 내부는 비교적 어둡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음악실에 다다르자 최병우 음악선생이 소정이와 그녀의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한다.

 

음악책과 점자책을 통해 소정이와 마주 앉은 최 선생은 여러 가지 음악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빛소리 합창단과 개인 음악 활동을 해온 소정에게 최 선생은 이것저것 과외 지도를 해준다고 했다. 

 

06.jpg
최병우 음악선생

 

점자를 통해 음악을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보이지 않기에 교재가 많지 않은 편이에요. 주로 이론보다는 실습을 통해 가르치고 어렵거나 모르는 사항은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일반 아이들하고 학습법에서 다르긴 해요.” (최병우 음악선생)

 

소정이가 피아노에 앉고 최 선생이 옆에 앉아 같이 건반 위에 손을 올린다. 소정이는 손의 감각에 따라 연주를 시작하고 최 선생님은 옆에서 세심하게 지도한다. 피아노를 치며 음악에 몰입하는 소정의 얼굴에 행복감이 번진다. 감정선을 따라 뭔가를 섬세하게 찾아 나가는 탐험가의 모습 같다.

 

02.jpg

 

보이지 않기에 청각이 예민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복도를 걷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맞히곤 합니다. 일반인들의 영역에서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청각이 발달한 아이들이 있어요. 소정이도 그런 편이고요. 음감이 좋죠.” (최병우 음악선생)

 

08.jpg

 

09.jpg

 

피아노 교습 후, 의자에 앉은 소정이에게 최 선생이 등 뒤에서 손으로 음계를 가르쳐 준다. 소정이는 음악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남다르다. 더불어 노래도 잘 부른다. 최근엔 고대 구로병원에서 제작한 병원학교 음반에 메인보컬로 참여했다.

 

10.jpg

 

아무래도 볼 수 없기에 학습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요. 하지만 교사로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보통 아이들처럼 치고받으며 놀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게 가장 가슴이 아파요. 저는 이제 6년 차 교사인데, 30년 이상씩 장애 학생들과 같이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장애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최병우 음악선생)

 

연주를 마친 소정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최 선생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며 마무리를 한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다. 음악이란 매개체는 얼마나 좋은 것인가?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온 소정이가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그런 모습을 걱정스레 보는 에디터와는 달리, 소정이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연신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명랑한 소녀의 모습이다. 

 

 

엄마의 노래

 


01.jpg
(좌부터) 소정이 어머니와 소정이


소정이는 전맹이 아니에요. 약맹이어서 어두운 곳에서는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어요. 오히려 빛이 있는 곳에서는 거의 보지 못해요. 그래서 소정이의 방안은 항상 어두운 상태예요. 소정이보다 더한 어둠 속에서 사는 애들이 많아요.” (소정이 어머니)

 

그나마 소정이가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김 씨는 감사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전맹인 아이들도 있고 더한 장애 속에서 사는 이들도 많은데, 소정은 어둠 속에서나마 조금이라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밝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있죠.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면그래도 소정인 오히려 밝고 명랑해요. 태어날 때부터 잘 보이지 않았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그 또래 아이처럼 잘 놀고 천진해요. 무엇보다 엄마로서 기쁜 것은 주변에서 소정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아해 주는 거예요.” (소정이 어머니)

 

소정이에겐 동생이 둘 있다. 동생들은 장애가 없이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소정과의 괴리감 없이 우애 있게 지낸다고 한다. 소정이 언니로서 동생들을 잘 챙겨준다고 한다.

 

 

385A1668.png

 

“5살 때부터 소정이가 노래와 음악을 하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욕심은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이것저것 많은 걸 하길 바라잖아요. 그러다 소정이가 2, 3학년 때 많이 아팠어요. 그때 정말 힘들고 미안하더라고요. 쉽지가 않다는 걸 느꼈고 부끄럽지만 다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소정이 어머니)

 

다른 아이와 똑같이 키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소정이를 일반학교에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후 한빛맹학교에 오면서 소정이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 씨는 소정이를 일반학교에도 적응이 가능한 아이로 양육하고 싶어 한다. 한빛맹학교에서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지원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넓혀 가려 노력해요. 처음에는 정말 다 해줬어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실수하더라도 혼자 해보라고 시켜요. 그럼 소정이도 짜증을 내죠. 사춘기가 오니까 가끔은 대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도우리 아이가 커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아요.” (소정이 어머니)

 

김 씨는 소정이와 동생 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막내가 아직 유치원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 챙겨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385A1652.png

 

교회에 다니며 신앙에 많이 의지해요. 소정일 위해서 새벽 기도를 하며 위안을 얻죠. 소정이도 교회에 가면 좋아해요. 복음성가도 많이 부르고 친구들도 사귀어요.” (소정이 어머니)

 

그래도 마음이 답답할 때는 차를 몰고 잠깐이라도 어디에 가서 크게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풀린다고 한다.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쉽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본인은 그 고통을 숨기기 마련인데, 이들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함께 필요한 것이다. 김 씨 역시 자신의 고통을 숨기며 그 또한 엄마의 숙명이라고 여기는 점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엄마인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정이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기보다는 가슴으로 노래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울림이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하모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정이 어머니)

 

소정이 꿈꾸는 멜로디

 

14.jpg


소정과 김 씨와 함께 교내 도서관에 가보았다. 대부분이 점자책이었는데 아이들이 서가를 두 손으로 붙잡고 점자책을 찾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왔다. 그것은 지식을 찾아가는 고결한 행로와 같아 보였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 피아노를 치는 소정의 모습에서도 느꼈고 이 학교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

 

우리 엄만 정말 좋은 엄마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아이들과 엄마 이야기를 자주 해요. 물론 가끔 제가 싫어하는 일을 시키긴 해요. 책상에서 지우개가 떨어졌는데 엄마가 찾으라고 해요. 정말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계속 시켜요.” (소정이)

 

385A1673.jpg

 

소정의 말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다소의 서운함이 함께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사랑으로 바뀔 서운함이었다. 소정과 그녀의 어머니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은 강해요. 제 동생들도 강해요. 일반학교의 아이들도 강하지요. 저와는 달라요. 그걸 알게 돼요. 다르다는걸요. 그런 부분 때문인지 동생들하고도 가끔 싸워요. 화도 내고 그래요.” (소정이)

 

17.jpg

 

소정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고 있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소정이가 택한 길 중의 하나가 노래와 음악이다. 소정이는 고려대 구로병원 병원학교가 희귀난치질환 및 장애 환아를 위해 제작한 음반아름다운 세상의 메인 보컬을 맡았다. 음반의 음원과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은 멜론이나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원 수익금은 전액 병원학교 아이들을 위해 쓰였다.

 

창작동요도 좋고요. 복음성가도 좋고요. 다 좋아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져요. 친구들하고아름다운 세상녹음할 때도 좋았어요.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긴 했지만요.” (소정이)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김 씨와 소정이에게 큰 힘이 되고 그런 사랑이 모여서 소정이가 꿈꾸는 하모니를 만들고 있다. 김 씨는 소정이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기보다는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울림이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하모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정이에게 노래 다음으로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노는 게 제일 좋아요. 노는 데는 안 빠져요. 학교 동생들하고 노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런데 남자애들은 싫어요. 장난이 심해요.” (소정이)

 

이렇게 보면 소정이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천진한 아이다. 노는 것에 대해 들떠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아직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현실에서 더 많이 놀고 꿈꿀 나이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본 눈 덮인 교사 전경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산비탈에 지어진 이 학교가 더 넓은 곳으로 내려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한빛맹학교

 

BEST 뉴스

전체댓글 0

  • 1128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시각장애 소녀의 ‘희망의 멜로디’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