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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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길에 눈이 내리면
    • 음식/여행
    2023-01-31
  • 선배들이 알려주는 돈 아끼는 육아용품 리스트
    내 첫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샀다. 그리고 거침없이 받았다. 그러나 골동품 마냥 처박힌 육아용품들, 하나같이 난감해졌다. 첩첩이 쌓여만 가는 출산용품을 미리 겪은 실용주의 선배 엄마들의 돈 아끼는 조언을 들어보자. 아기 속옷만 옷장 가득/ 최은주(34) 첫 아이지만 육아용품 구입은 최소로, 알뜰하게 한 편이다. 출산용품으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아기 저고리나 내의가 아닐까. 유아용품점에서 이구동성으로 권한 아기 내의 덕분에 우리 아기 겨울 내의만 여러 벌. 애가 훌쩍 크고 나니 아직 박스도 못 열어보고 쌓여 있는 내의 선물들에 난감해졌다. 또한, 아기를 키우면서 의외로 필요가 없던 용품은 신생아 모자. 아이돌도 울고 갈 만큼 깜찍한 모자로 하나 장만했더니 아기가 머리를 긁더라. 방한용으로 병원 외출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어 아쉬운 대로 처분해 버렸다. 우리 아기만 모자 쓰는 걸 싫어했던 건 아니겠지? 원목 침대냐 범퍼 침대냐/ 배지은(31) 드라마처럼 부부 침대 옆에 ‘있어 보이는’ 아기 침대를 놓고 싶었다.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나름 최고급 원목 침대. 지금도 사용하느냐고? 아기 낳고 초반에만 유용했다. 7개월쯤 돼서 아기가 물건을 잡고 일어서려고 하니 아찔하더라. 몇 번 쓰지도 못하고 지금은 분리해서 보란 듯이 구석에 처박아 뒀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기와 같이 방바닥에 누워 이용할 수 있는 범퍼 침대도 고민해 봤지만,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활동반경이 커지니 사용하기 난감한 건 마찬가지. 가뜩이나 좁은 방이 더 좁아 보이기도 하고. 옆집 또래 아기 엄마는 생후 1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3단계 변신이 가능한 원목 침대로 잘 쓰고 있다는데…. 애초에 판단 미스였다. 아빠를 독서왕으로 만드는 책들/ 최대영(31) 아직 “엄마”, “아빠”도 말 못하는 아기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선물이 책이라니. 주변에서 예쁜 그림책만 보면 하나씩 선물해주는 통에 내 책보다 아기 책이 더 많아졌다. 더불어 이 굵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기에게 책을 읽어줘야 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미혼 친구들에게서 들어오는 책들은 체계적인 연령별 동화가 아닌 아기 서적의 베스트셀러 위주. 이 많은 책을 다 언제 읽어 주고, 어느 세월에 다 읽히느냐고… 조금 더 비싸더라도 기저귀랑 옷 선물은 좀 안 되겠니? 뒤집으니, 모빌 볼 새가 없네/이미지(29) 미혼 시절부터 ‘실용주의’ 철학이 몸에 밴 탓에, 아무리 내 아이를 위한다지만 불필요한 것은 딱 잘라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기의 특성상 수명이 짧은 육아용품을 구입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선물 받은 아기용품 중에 우리 아기의 간택을 가장 받지 못했던 건 의외로 모빌. 출생 후 3개월 후부터는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해 가만히 누워있질 않는다. 모빌을 보며 혼자 놀기도 잠시. 뒤집기 시기부터는 부모의 몸개그가 아기에겐 최고의 놀이더라. 보행기 전용신발도 필수인 줄 알았지/ 최선혜(35) 아기는 보행기를 태울 때 꼭 보행기 신발을 신겨야 하는 줄 알았다. 마치 밥 먹을 때 숟가락이 필요한 것처럼. 초보 엄마는 “보행기를 태우다가 아기 발가락이 꺾이지는 않을까”, “신발을 신기면 신발이 너무 커서 불편하지는 않을까”, “굳은살 하나 없이 말캉한 아기 발바닥이 아프진 않을까”하는 걱정 등이 너무 많았던 거다. 그래서 구입했다. 보행기 신발! 하지만 집안에서만 타는 보행기에서는 특별히 전용 신발이 필요치 않더라. 양말만 신고도, 심지어 맨발에도 우리 아기는 잘만 타더라. 보행기 신발, 신지도 못하고 가격만 비쌌다. 두꺼워도, 방수돼도 소용없어 / 김희정(32) 출산 전부터 아기용품은 꼭 필요한 것 위주로 마련해서 다 잘 썼다. 아기용품 중에 바닥에 까는 이불은 잘 사용하지만, 요샌 워낙 집들이 난방이 잘 되다 보니 덮는 이불은 쓰임새가 녹록지 않다. 오히려 아기에게 수건이나 얇은 천을 덮어주는 게 더 좋았다. 애들도 더우면 땀을 흘리고 짜증 내고 보채거든. 차라리 이불은 아이가 더 컸을 때 아이 취향에 맞게 사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지인으로부터 “우리 아기는 유용하게 잘 썼어”라면서 방수요를 선물 받았는데, 한 번 펼쳐 보기가 무섭게 다시 집어넣었다니까. 참고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라이센스 구매
    • 출산/육아
    2023-01-31
  • 프랑스 파리,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걸
    비행기에 올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샹송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를 귀에 꽂았다. 살바토레 아다모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귓속을 간질인다. 겨울, 그리고 프랑스. 비행기는 파리를 향해 날았다.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도시. 내겐 어떤 추억을 선물해 줄까. TV와 영화에서 보던 파리를 떠올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날씨는 흐림을 유지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마주한 영화 속 주인공 같던 파리지앵 남녀 그날 에펠탑이 쏘아 올린 조명이 밤하늘을 갈랐다 센강을 따라서 비를 맞으며 걸었던 추억이 강렬하다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서 도착했던 개선문 때론 유명 화가의 명작보다 그를 지켜보는 대상이 명작이다 (좌) 뛰노는 아이들조차 누군가는 그 안에서 고독을 느낀다 (좌) 여전히 이어오는 고독 시리즈 사진의 시작 (우)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내는 루브르박물관, 흑백이 낫다
    • 음식/여행
    2023-01-31
  • 프랑스 파리,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걸
    비행기에 올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샹송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를 귀에 꽂았다. 살바토레 아다모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귓속을 간질인다. 겨울, 그리고 프랑스. 비행기는 파리를 향해 날았다.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도시. 내겐 어떤 추억을 선물해 줄까. TV와 영화에서 보던 파리를 떠올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몽마르뜨 언덕에 비가 내리면 오랜 날갯짓이 힘들었는지 비행기가 땅에 내려앉으며 궁둥이를 바르르 떨었다. 자연스레 감았던 눈이 뜨였다. 샤를드골 국제공항, 어느새 내 몸이 파리에 들어와 있었다. 파리에 도착했던 날, 늦은 오후에 날씨까지 흐려서 도시의 첫인상은 흑백에 가까웠다. 세월이 올라앉은 영화 필름처럼 제법 물기가 빠져나간 컬러가 파리 공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차가웠다. 세계의 패션이 시작되는 화려한 도시인데 내 눈에 파리는 차가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낯선 이방인 같았다. 파리를 흑백사진으로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건 몽마르뜨언덕에 도착했을 때다. 그게 좋은 의미만은 아니었다. 빈티지하지만 화려한 컬러가 돋보이는 곳을 흑백으로 담겠다니. 사실 몽마르뜨는 내게 2001년 개봉한 영화 <아멜리에>로 대변되는 곳이었다. 그저 구전되던 단어로만 생각했던 몽마르뜨언덕. 그곳에 가면 검은 단발머리에 큼직하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아멜리에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마중 나와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손가락이 천국을 가리킬 때 바보는 손가락을 쳐다보죠”라는 명대사를 쏟아놓은 영화 속 그녀는 유럽판 빨강 머리 앤처럼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진 아가씨였다. 그런데 땅거미가 내린 몽마르뜨에는 마침 보슬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난 우산이 없었다. 사실 우산을 잘 쓰지도 않는다. 나 말고도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12월의 끝자락,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라지만 비를 맞고 있어도 파리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카메라를 흑백모드로 맞췄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컬러는 오롯하게 조금 더 검고 조금 더 하얀색으로 담기게 된다. 날씨도 한몫했지만, 갑작스레 차분해졌다. 하릴없이, 별일 없는 추억들 언덕을 오르는데 상점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었다. 처음 방문한 파리, 아무런 정보 없이 왔다는 건 아쉽다. 여행마다 그랬지만 이번에도 조금은 후회스럽다. 가게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리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귀띔으로 언덕 꼭대기 사크레쾨르 성당에 오르면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빗줄기는 더 가늘어졌지만 제법 젖은 몸과 이미 어두워진 거리 때문에 을씨년스러움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 아직 환하게 불을 밝힌 카페 안쪽으로 마치 프랑스 멜로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앉아 있는 남녀와 눈이 마주쳤다. 난 멈칫했는데, 그들은 문밖에서 서성이는 낯선 여행객의 카메라에 살짝 미소 짓고는 이내 자신들의 이야기로 다시 빠져들었다. 파리지앵에겐 그냥 평범한 저녁 시간일 텐데 ‘행인1’ 역할을 하던 난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에펠탑을 기대했건만. 성당까지 갔는데 날씨 탓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포기할 만도 했지만 직접 에펠탑 앞에까지 가서 야경을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머뭇거리다간 밤이 될 것 같아 근처 물랑루즈 극장까지 분주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오래된 건물에 앙상하게 붙어 있는 이정표를 보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물랑루즈는 찾기 쉬웠다. 물랑루즈는 프랑스어로 ‘붉은 풍차’라는 뜻이다. 건물 옥상에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인적이 줄어든 시간이지만 화려한 조명만으로도 과거 이곳이 얼마나 불야성을 이루던 곳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에펠탑.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조명이 화려했다. 에펠탑에서 쏘아 올린 조명이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가른다. 고요했다. 잔잔한 바람이 귀를 간질였다. 그제야 파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가만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날 밤은 유난히 조용했고, 나 역시 설렘을 꾸짖으며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관심 밖의 루브르와 오르세 파리에 머물렀던 일주일. 날씨는 한결같이 흐림을 유지했다. 덕분에 혼자 다녔지만 나는 고독과 동행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센강을 따라 늦은 저녁까지 걸었던 날도, 에펠탑 밑에 앉아서 과자 두 봉지를 먹으며 샹송 한 곡을 외우던 날도,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그림이 멀찍이 보이는 의자에 기대어 쪽잠을 청했던 날도, 오르세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내가 아는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날도, 별이 땅으로 쏟아진 것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이 거리를 수놓던 샹젤리제 거리를 걷던 날까지. 난 절대 외로움이 아닌 고독과 함께했다. 처음엔 파리의 축축한 겨울 날씨를 탓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그럴 만해서 그랬지 싶다. 고독한 눈으로 본 세상을 흑백으로 담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설렘은 점점 줄어들고 대단한 것보다는 소소한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많은 것을 찍어서 한 장을 얻기보다 한 장을 찍어서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상한 습관을 들이고 있었다. 일자무식으로 찾았던 파리에서도 꼭 가보고 싶던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이미 설렘은 바닥을 달리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졌다는 모나리자 그림을 마주하고도 ‘알고 있는 그림’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정말로 그랬다. 학창시절 시험에 나온다고 달달 외우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보고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고풍스러운 박물관 건물 곳곳을 찍다가 나중엔 그림과 조각이 놓인 받침대나 가장자리가 깨진 대리석 계단, 유리창 밖의 풍경, 바닥에 붙어 있는 껌 등을 찍었다. 그날, 그 시간, 그곳의 추억은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내가 속해있던 공간을 찍은 사진이 더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찍다 보니 흑백사진은 단순히 OX나 YES, NO로 나눌 수 있는 흑백논리의 것이 아니었다. 어둡고 밝은 것으로만 표현하는 흑과 백 속에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가 존재했다. 셔터를 많이 누르지 않는 나지만 더 고민하고 아껴서 찍었다. 필름도 아닌 디지털 사진인데 웃긴 일이다. 가끔 ‘그때 조금 더 많이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리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진을 찍는 쪽보단 그날 찍은 사진을 열었을 때 한 번에 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쪽도 나쁘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해, Aren't you? 고작 일주일. 4일이 지나면서 난 그냥 길을 걸어 다녔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걸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는 분명해졌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는 몰랐다. 흐림으로 일관한 파리의 겨울 속에서 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고독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좌) 뛰노는 아이들조차 누군가는 그 안에서 고독을 느낀다 (우) 현대인은 누구나 고독하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물론 내 생각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이것 역시 내 생각이다. 외로움은 누군가 대상이 필요한 상태여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채워져야만 해소되는 마음의 상태다. 하지만 고독은 대상이 필요하지 않다. 그게 사람이든 혹 사물이든 고독은 채워야 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독은 ‘즐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독은 인생의 과정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다. 포만감으로 이어지던 마음에 공극이 생겨나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되새김하는 비어 있는 만큼의 공허함이다. 모두가 가지지만 아무도 채울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인생의 굴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 여전히 이어오는 고독 시리즈 사진의 시작 (우)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내는 루브르박물관, 흑백이 낫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게 됐다. 뭐가 고독인지, 그게 왜 고독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끌리는 대로 발을 내딛고 눈에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누르면서 아직까지 고독은 내 사진의 작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처음 갔던 그때 파리의 겨울. 흑과 백으로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진 흑백을 경험한 이후, 그랬다. 포토그래퍼 이두용
    • 음식/여행
    2023-01-31
  • 정동길에 눈이 내리면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먹고 들어오는 길,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내리는 눈을 보며 첫눈, 겨울여행 등 ‘눈’에 대한 예쁜 생각들을 하던 참이었다. 눈이 점점 더 내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각사각 눈이 쌓인 거리를 걷고 싶었고. 자연스레 정동길이 떠올랐다. 바로 ‘눈이 오면 걷고 싶은 거리’ 정동길로 향했다. 눈이 오면 걷고 싶은 거리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동길이 나온다. 봄에는 초록빛 가로수가, 가을엔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풍성했던 가지들이 겨울이라 앙상하다. 이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을 양옆에 끼고 걷는다. 예스러운 느낌도 나고 외로워도 보이는 이 길은, 조용하지만 정겹기도 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가끔씩 지나는 식당과 카페들이 조명을 켠다. 따스한 불빛과 함께 눈이 쌓여가는 거리는 겨울이라 더 운치 있다. 소중한 사람이 생각나는 그곳 정동길을 걷고 있다 보면,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손을 꼭 잡고 걷는 중년의 부부를 보며 부모님이 생각났고,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까르르’ 웃으며 이따금 사진을 찍는 여고생 무리를 보며 고등학교 친구들도 생각났다. 그리고 따뜻한 차나 간식거리를 ‘호호’ 불며 사 먹는 커플을 보니 연인도 생각났다. 겨울이 가기 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눈 내리는 정동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고 걷기만 해도 그 겨울 따뜻한 추억을 하나 갖게 되지 않을까. 포토그래퍼 허승범
    • 음식/여행
    2023-01-31
  • (칼럼) 위험한 아빠, 딸바보 아빠
    아빠들의 ‘딸바보’ 열풍이 한창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금쪽같은 내 새끼> 등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며 ‘모성애’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아빠와 자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있다.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높을수록 유아의 자아존중감과 사회성, 도덕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아빠효과(the effects of father)’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실제로 “아빠의 육아 참여가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운다”다는 연구결과가 교육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아빠 육아’ 바람이 부는 추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교육현장에서 만난 ‘딸바보 아빠’들의 ‘사랑스러운 딸’들은 또래와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흔하다.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아이들은 자신 밖에 모르는 인지발달 단계에 있는데, 이때 가정에서 아빠가 ‘네가 최고야!’가 아니라 ‘너만 최고야!’로 키운다면 아이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최고라는 우월감이 있지만, 반면에 의존적이다. 또한, 아빠의 비호를 받고 자라 자신감이 넘치고 리더십이 있을 것 같지만,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누군가 앞에서는 금방 무너진다. 또한 문제해결력 부족 역시 문제가 된다.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 중의 하나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양보와 배려를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내고 실수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음으로써 얻어진다. 그런데 ‘내 딸 곁에 있고 싶어서’ 혹은 ‘아이가 낯선 곳에서 정서적으로 충격을 받을까봐’ 아이를 감싸려고만 들면, 아이는 중요한 성장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어진다. 이처럼 아빠의 마음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마냥 사랑스러운 딸바보 사랑이었으나, 내 딸아이가 정작 바보가 될 수도 있다. 진정한 딸바보 아빠는 딸에게 바보 같거나, 딸을 바보로 만드는 아빠가 아니라, 가정과 세상에서 필요한 딸을 키우는 아빠일 것이다. 딸바보 아빠의 현명한 육아법 아빠와 딸, 0~10세까지 0~1세 이 시기는 무조건 사랑하는 시기다. 기저귀가 젖으면 바로 갈아주고 배고프다고 울면 바로 먹여주어야 하는 등 최대한 아이에게 맞추어야 한다. 이때는 사랑이 넘쳐도 좋은 시기로 특히 아빠는 아이 목욕을 시켜주어 스킨십을 많이 하자. 1~3세 언어의 폭발기라 불릴 만큼 말이 느는 때이므로 높임말을 사용해주고 아이가 묻는 말에 정성을 가지고 답하라. 이 시기부터 친절과 절제, 칭찬과 훈육이 함께해야 한다. 3세~유아기 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게 한다. 딸아이는 삐치기 쉽다고 무조건 비위를 맞추지 마라. 언어적인 격려와 칭찬을 많이 하되,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한 시기다. 아이의 사회생활(학교생활과 친구)에 관심을 가져라. 아빠의 사회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빠가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를 통해 딸에게 좀 더 큰 세상을 보여주자. 참고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라이센스 구매
    • 출산/육아
    2023-01-31
  • 영혼을 위한 안식처, 성북동 길상사
    하나님도 부처님도 믿지 않지만, 때로 종교에 귀의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믿고 싶어지는 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그런 날.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절에 들르면 마음이 괜스레 편안해진다.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자리한 성북동의 절, 길상사는 겨울을 다소곳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한 여인의 사랑과 염원이 담긴 절, 길상사 길상사는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과도 관련이 깊은 절이다. 시인 백석은 젊은 나이에 기생 김영한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둘은 신분 차이와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백석의 대표 시로 꼽히는 머나먼 러시아로 떠난 백석이 김영한을 그리워하며 쓴 것으로 잘 알려졌다. 백석을 그리워하던 기생 김영한은 시간이 흐르고 요정 대원각의 주인으로 큰돈을 벌게 된다. 이후 그녀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받아 시주하여 지은 절이 바로 길상사이다. 7천여 평의 대지에 40여 동 건물로 이루어진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로 변하기까지에는 김영한의 큰 노력이 있었다. 대원각은 당시 시세로 1,0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재산이었지만, 그녀는 이 재산을 모두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되기까지는 약 10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무소유를 설법했던 법정 스님이 그녀의 간곡한 간청을 10년 만에 받아들였기 때문. 결국, 법정 스님은 김영한의 법명 길상화를 따서 절 이름을 길상사로 붙이고 땅과 건물을 모두 조계종에 편입시켰다. 청아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담한 절 길상사의 내부는 작고 소담스러운 멋이 있다. 그 규모는 거대하지 않지만, 산비탈과 계곡을 벗 삼아 조화롭게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설법전과 극락전 건물 사이에 위치한 큰 나무는 길 상사의 오래된 터줏대감이다. 예전부터 자리를 지켰을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했지만,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겨울의 절은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 조용한 정적을 깨고 법당에서 이윽고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혀 만드는 청명한 공명음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마력이 있었다. 일상의 번뇌를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깨끗한 소리에 이윽고 귀가 맑아진다. 목탁 소리를 배경 삼아 스님과 보살들의 염불 소리가 절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절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본다. 오르막 비탈길을 따라 자리한 돌탑이 유독 눈에 띈다. 오랜 세월을 절과 함께한 거대한 돌탑부터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미니 돌탑까지 제각각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무소유의 철학을 부르짖던 법정 스님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이 담긴 돌탑. 참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그마저도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다. 바닥에 떨어진 돌 알맹이 하나를 움켜쥐고 탑의 맨 꼭대기 돌에 살포시 얹어놓는다. 그리고 욕심나는 것을 하나 생각하고 소원을 빌었다. 그녀의 마음을 기념하며, 김영한 공덕비 오르막길로 조금 들어서다 보면 왼편에 작은 돌다리가 하나 놓여있다. 돌다리를 건너면 시주 길상화인 故 김영한의 공덕비가 보인다. 무덤 앞에 놓여있는 노오란 수선화 화분이 생기 있게 예뻤다. 고개를 푹 숙인 듯한 모습은 왠지 그녀의 일생처럼 슬프고 처연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피고 지는 꽃처럼 그들의 만남도 끝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만남은 짧고 강렬했기에 잠깐의 추억은 평생토록 기억된다. 시를 사랑하던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인.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그 남자를 따라가지 못했던 그 결정을 평생 후회하며 해방과 전쟁을 겪은 김영한.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슬프게 끝이 났지만, 절을 찾는 수많은 사람은 두고두고 참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나타샤, 한 떨기 수선화 같은 나타샤. 비록 그녀의 사랑은 미완으로 끝났다 할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어 더욱 오래도록 이어진 사랑. 그 애달프고 한결같은 한 여인의 사랑이 마음 깊숙한 곳을 은은하게 울린다. 포토그래퍼. 권오경
    • 음식/여행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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