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일치기로 놀러 가기에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제부도를 추천하겠다. “물도 탁하고, 볼 것도 없는데 서해안 자락 그 많은 섬 중 왜 하필 제부도냐”는 볼멘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 섬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바다 한가운데 길이 있고, 고운 모래사장 대신 작고 예쁜 조개들이 깔린 섬 제부도에 다녀왔다.
바닷물이 시작되는 길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제부도는 서울에서 고작 한 시간 거리이지만 먹을 것, 볼 것, 할 것 많은 섬이다. 활동적인 이들은 승마 체험, 갯벌 체험 등을 즐길 수 있고, 그저 차분하게 쉬면서 경치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바닷가 풍경이 있다.
제부도를 검색하면 꼭 빠지지 않는 빨간 등대 역시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선명한 빨간색이 바다와 대조를 이루는 이 등대 때문에 제부도 선착장은 사진 찍는 사람들로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북적인다.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은 단연 제부도의 간판 명소다.
아득한 옛날 제부도 바닷가에 금술 좋은 부부가 살았다. 사십이 넘도록 슬하에 아이가 없자 지극정성으로 아이의 점지를 빌어 어렵사리 쉰둥이를 낳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하였다. 세월이 흘러도 집안을 벗어날 수 없는 아이 곁으로 어린 매가 떨어진다. 아이는 어린 매에게서 온기를 느끼고 정성껏 키운다. 어느덧 부부는 팔십이 되었고, 장성했지만 부모를 부양할 수 없는 아들을 대신해 매가 가족들을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부도에 임금님의 행차가 있었는데, 왕비가 실수로 반지를 바다에 빠뜨렸다. 이를 안 노모의 아들과 매는 왕비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주었고, 그 보답으로 재상이 된 아들은 매와 함께 한양에 간다. 그 후 아들은 자기 일에 바빠 매와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식은 반면, 매는 고향이 그리워 다시 제부도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매는 까마귀와 까치들의 질투 어린 공격을 받는다. 이에 때마침 제부도에 머무르고 있던 임금이 매를 살려주라는 명을 내려 그의 호위병들이 일제히 까마귀와 까치들에게 활을 쏜다. 그러다 한 병사가 실수로 매를 쏘게 된다. 이에 거꾸로 떨어져 죽은 매는 바위가 되었고, 제부도 앞바다에 널려있는 검고 모난 돌들은 까마귀의 사체라 한다.
바다 내음 고스란히 담은 음식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메뉴는 갯벌의 별미 바지락 칼국수다. 그런데 식당을 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편하지 않다. 일렬로 쭉 늘어선 식당은 평일 점심부터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들로 넘쳐난 것. ‘이리 오라’며 얌전하게 손짓하는 아저씨부터 슈퍼맨 옷에 가면까지 갖춰 쓴 아저씨, 피카츄로 변장한 아저씨까지 모두 자신의 개성을 어필하려 안달이었다.
그런 광경이 익숙하지 않아 결국 모든 식당을 지나쳐 가장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나름 ‘오션 뷰’ 식당이었다.
곧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인심 좋게도 바지락과 칼국수가 가득 담겨 나왔다.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면이 진짜 손칼국수여서 그런지 아주 쫄깃했고, 아무리 먹어도 끝없이 나오는 바지락은 국물의 시원한 맛을 더해주었다.
제부도까지 와서 겨우 바지락 칼국수로 만족할 수 없다면 근처에 사강시장을 추천한다. 제부도 초입에 위치한 사강시장은 각종 구이용 어패류를 판매하는 곳으로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1만원이면 웬만한 해물 1kg은 거뜬히 살 수 있다고. 자그마한 바지락부터 맛조개, 봄철 보양식으로 좋은 전복과 굴, 낙지 등을 실속 있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포토그래퍼. 권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