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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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는 아이들을 위한 코믹북에서 유래했다. 아이의 상상력은 어른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상상 속 친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슈퍼히어로 만화를 볼 때 완전히 몰입한다. 우리는 마징가 제트, 그랜다이저, 태권브이를 보면서 컸고 미국인들은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를 보면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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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신과 만화 속 슈퍼히어로를 동일시한다. 그들만큼 강해지기를 바란다. 학교나 집에서 야단맞거나 친구가 괴롭히는 등 괴로운 일이 생기면 슈퍼히어로를 떠올린다. 마치 자기가 슈퍼히어로가 된 것처럼 상상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어렸을 때 마징가 제트, 그랜다이저, 태권브이를 보면서 고통을 이겼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러한 만화 속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마법의 힘이 점점 약해진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우리는 과거로 퇴행하면서 어릴 적 봤던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을 떠올린다. 



슈퍼히어로는 약한 인간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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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도 제각각 개성이 있다. 슈퍼맨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슈퍼맨은 무슨 일이든지 가볍게 해결한다. 배트맨은 악과 싸우기 위해서 존재한다. 배트맨은 악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곤경에 처하고 극복한다. 스파이더맨은 날렵하다. 말도 가볍다. 엑스맨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삐딱한 슈퍼히어로다. 아이언맨은 기계의 힘을 빌린 똑똑한 슈퍼 히어로다. 


자신이 처한 처지와 그에 따른 심리에 따라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퍼히어로가 달라진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는 아이는 슈퍼맨을 선호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녀석들을 누군가 처벌해주기를 바라는 아이는 배트맨에 빠져든다. 산만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재빠른 스파이더맨이 마음에 든다. 자신이 남과 다르면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엑스맨을 선호한다. 심리적 투사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슈퍼히어로는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모두 다 자신의 수호신이 가장 강했으면 한다. 그러다 보니 슈퍼히어로 중에서 누가 제일 힘이 세느냐로 말싸움하게 된다. 우리가 마징가 제트와 태권브이 중에서 누가 더 센지 다투었듯이, 미국 아이들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를 가지고 말싸움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만약에 어린아이들에게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물어보면 많은 아이가 슈퍼맨이 이긴다고 할 것이다. 슈퍼맨은 천하무적이고 배트맨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큰 아이들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운다는 상황 자체가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두 슈퍼히어로가 아무 이유 없이 싸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두 슈퍼히어로는 인간의 간계에 빠져서 서로를 대적하게 된다. 어쩌다 이들은 이토록 어리석어진 것일까? 



우리는 왜 서로 싸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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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만화에서 보여준 강력한 힘과 절대 선을 영화에서 보여주었다. 주 고객층은 아이들과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슈퍼맨4 최강의 적(1987)>까지 제작된 후 관객동원의 한계에 부닥쳤고 슈퍼맨 시리즈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이후 등장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었다. 배트맨이 아닌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잭 니콜슨의 조커 연기가 빛을 발했다. 그러면서 성인관객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여전히 선악의 구도는 명확했다. 배트맨 역시 <배트맨 4: 배트맨과 로빈>까지 아주 단순한 선악 구도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다 배트맨 캐릭터가 달라진 것은 <메멘토>같이 복잡한 영화를 감독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스(2005)>부터였다. 배트맨은 단순히 악을 쳐부수는 존재가 아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하는 상황으로 갈등한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배트맨이 악당에게 쫓기는 장면보다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이 더 많아졌다. 그러한 갈등은 <배트맨 다크나이트(2008)>에서 극대화 되어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로 종결된다.


슈퍼맨 역시 마찬가지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통해서 충격적인 데뷔를 하고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서 차별받고 박해받는 히어로를 다루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슈퍼맨 리턴스(2006)>에서 슈퍼맨은 지구인과 우주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300>의 감독 잭 스나이더는 <맨 오브 스틸(2013)>에서 그러한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러다 이번에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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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슈퍼히어로는 점점 더 인간의 감정에 근접하게 되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나약해졌다. 어쩌면 타락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결점 슈퍼히어로들이 이토록 인간적으로 변화한 이유 중 하나는 관객들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캐릭터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었다. 초강대국에서 자라서 성인이 된 미국인의 세계관은 바보같이 단순했다. 선악이 지나칠 정도로 분명하다. 회색지대란 없다. 결론은 무조건 권선징악이고 당연히 미국인이 선이다.


그런데 월남전에서 패배하고, 911테러를 거치면서 미국인의 가치관은 변화했다. 과거와 같지 않다. 그들도 이제 두려워하고 흔들린다. 그러한 미국인의 가치관이 이제 슈퍼히어로 영화에 반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주 고객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슈퍼히어로 무비 대신 실사 만화에 정신을 쏟는다. 따라서 이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는 성인 관객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인이 공감할 캐릭터가 필요하다. 천하무적 무결점 슈퍼히어로는 비현실적이다. 인간적인 슈퍼히어로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슈퍼히어로들이 인간의 감정을 지니게 되었고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에 그들도 인간처럼 서로 싸우게 되었다.


과거에 슈퍼맨은 단순히 선하고 착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의 슈퍼맨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의 육체는 강인하지만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과거의 배트맨은 악을 쳐부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슈퍼맨을 투사의 대상으로 삼는다. 



배트맨과 슈퍼맨, 때론 울고 싶은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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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인간이 된 슈퍼맨과 배트맨의 심리를 살펴보자. 슈퍼맨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그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비난받아야 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다. 슈퍼맨은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그는 정의롭고 올바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슈퍼맨이 선을 행하는 이유는 단지 선해서가 아니다. 


슈퍼맨은 사고로 인해서 부모를 잃었다. 그래서 입양가정에서 자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양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정체성의 혼란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낮은 자존감은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며 상승된다. 선행은 자존감 유지를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그는 선을 행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자기 존중감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은 영원히 움직이는 엔진과 같다. 그리고 그 엔진을 돌리는 연료는 선행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칭찬이다. 반대로 사람들의 비난은 그의 자아에 손상을 가져온다. 따라서 비난받는 것을 인내하지 못한다. 남을 돕는데 실패한데서 기인하는 죄책감이 더해지면 슈퍼맨의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테러를 막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 때문에 영화 속 슈퍼맨은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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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의 싸움에서 드러나는 슈퍼맨의 감정은 신이 인간에 대해서 가지는 오만을 연상시킨다. 슈퍼맨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다. 슈퍼맨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마치 신이 강림하는 장면과 같다. 영화 속에서도 사람들이 슈퍼맨을 신처럼 숭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슈퍼맨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가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을 지배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의 힘은 신에 비견할 만하다. 그래서 그는 감히 인간 나부랭이인 배트맨이 싸움 거는 것에 분노한다. 


배트맨이 악을 처벌하는 동기는 얼핏 보면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배트맨이 부모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 이유는 부모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죄책감으로 인해서 배트맨은 불행하다. 어쩌면 그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부모를 죽인 범죄자를 처벌하면,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악을 박멸하면 자신이 과거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악이 사라지면 배트맨이 과연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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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은 트라우마에 계속 시달리는 인물이다. 여전히 또다시 공격당할까 또다시 위협받을까 두려워한다. 프로이트의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쥐 사나이(rat man/래트맨)’이다. 부르스 웨인은 어려서부터 박쥐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그는 박쥐의 모습을 하고 적을 응징한다. 그 이유는 뭘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배트맨이 박쥐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뭘까? 부모의 죽음에 대한 공포, 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박쥐라는 대상으로 전치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의식상에서는 박쥐를 두려워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박쥐와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배트맨 복장 그 자체가 그의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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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배트맨은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계속 스스로 확인시켜야만 한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악을 공격해야 한다. 악을 물리치면서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배트맨이 악을 공격하며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정의를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반동형성’이라고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용감한 척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당하면 그것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대하게 되면 트라우마가 재작동하고 불안해진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마주 대하게 되면서 배트맨은 불안과 공포에 압도된다. 그 대상이 선한 존재냐 악한 존재냐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그의 존재 자체가 자신을 취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자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인해서 위협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대상을 없애야 한다.  



삶에는 반드시 악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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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도 사라지고 베인도 사라지고 인간 악당이 모두 사라지면 배트맨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서 슈퍼맨이 선행을 먹고 살듯이 배트맨은 싸움을 먹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배트맨에게는 심리적으로도 새로운 적이 필요했고, 때마침 슈퍼맨이 등장했다. 슈퍼맨이 외계인을 쳐부수는 과정에서 도시가 파괴됐고, 배트맨은 그 일로 인해 자신의 건물이 무너지고 직원이 죽는 경험을 한다. 그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외계에서 온 악이었다.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선이다. 하지만 배트맨이 보기에 선이냐 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슈퍼맨과 외계 악당의 차이점보다는 파괴적인 힘을 가졌다는 둘의 공통점에 집중한다. 


악당 역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맡았다. 그는 <아메리칸 울트라>에서 기억을 잃은 병맛 첩보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이번에 맡은 렉스 루터 역은 어떤 점에서 오텔로에서 이야고의 캐릭터와 유사하다. 배트맨과 슈퍼맨을 이간질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간질에 잘 넘어간다. 트라우마도 있고 정체성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둘 다 마음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슈퍼맨은 사고로 친부모를 잃었다. 배트맨의 친부모는 살인을 당해서 사망했다. 트라우마로 인해서 그들의 마음은 불안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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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슈퍼맨과 배트맨은 이중생활을 한다. 슈퍼맨은 평소에는 오히려 당하고 사는 숙맥이다. 유능하지도 못하다. 인간으로 지낼 때의 모습인 클라크는 슈퍼맨이었을 때의 완벽함과는 반대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즉 슈퍼맨은 초인과 범인으로 분리되어 있다. 배트맨은 현실에서 부와 명예를 지닌 완벽한 인간이다. 그는 낮에는 사업가이고 밤에는 폭력을 행사한다.


배트맨은 낮과 밤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의 자아는 비범함과 평범함, 용기와 소심함, 낮과 밤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반대되는 인격적 측면이 분리·통합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음속 분리된 틈을 파고드는 렉스 루터의 이간질에 슈퍼맨과 베트맨은 조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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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렇게 불완전한 두 남자를 중간에서 이어주는 존재가 원더우먼이다. 여자가 있어야 남자들은 화해한다. 두 슈퍼히어로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슈퍼우먼인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은 잊을 수 없는 존재다. 1970년대만 해도 검열이 있어서 TV에서 조금만 노출 장면이 나와도 잘리고는 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원더우먼의 아름다운 몸매는 검열이 되지 않았다. 린다 카터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주인공처럼 원더우먼 그 자체였다. 의 섹시한 이미지로 스타덤에 오른 갤 가돗의 원더우먼은 왠지 나에게 낯설었다. 


영화 속에서의 고담은 어쩌면 미국의 매트로폴리스를 상징한다. 911 이후의 미국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처음에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은 누가 봐도 911을 연상시킨다. 911 이후에 미국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외부의 적을 아무리 쳐부숴도 내재한 저성장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어벤져스가 되었건 저스티스 리그가 되었던 이제 미국인들은 슈퍼히어로 하나만으로는 안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슈퍼 히어로 무리가 필요하다. 미국인들이 갈라져 싸우듯이 이제는 슈퍼히어로들끼리도 때때로 갈라져 싸운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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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도 사는 게 괴롭다,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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