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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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기다리며>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의 주제는 복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복수에는 3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는 가족의 복수를 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친구 혹은 동료의 복수를 하는 경우다. 세 번째는 지고는 못 사는 이가 당한 만큼 되받아주는 경우다.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를 잃은 딸이 15년을 기다렸다가 복수를 한다.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복수혈전은 현실에 없다?

 

부모의 복수를 하는 자식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내가 제일 처음 보았던 복수극은 <네바다 스미스>라는 오래된 영화였다. 1966년에 제작되었으니 나보다 더 나이가 많다. 스티브 맥퀸이 어렸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인다. 저렇게 지독한 복수가 있다니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복적으로 충효에 대해서 학습을 받고 홍콩 무협 영화를 수도 없이 보면서 자식이 부모의 복수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스토리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부모의 죽음을 복수하는 자식이 끝없이 등장하는데 왜 신문이나 인터넷에는 자식이 부모의 복수를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뉴스가 없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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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실제 살인사건의 상당 부분은 치정에 얽혀서 일어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아내가 상대방 여자를,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이 상대방 남자를 죽이기도 한다. 의처증, 의부증 환자들은 배우자가 외도 근처에도 가지 않더라도 망상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때로는 헤어지자고 하는 연인을 죽이기도 한다. 또는 스토커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스토킹을 당하는 상대를 죽이기도 하고 경쟁자를 죽이면 연인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에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남녀관계를 제외하면 원한이 복수로 이어지는 경우란 거의 없다. 자식이 죽는 경우 부모가 끝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소송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살인을 통해 복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모가 죽었을 때 자식이 느끼는 분노는 그 강도가 훨씬 덜하다. 적당한 금액에 합의를 보면 그냥 잊는 경우도 많다.

 

더군다나 어려서 부모를 잃은 경우는 부모와의 유대감이 사실상 거의 없다. 복수할 의지나 힘도 없다. 부모 중에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 자식의 삶에 더욱 치명적이다. 위로해주는 이도 지켜주는 이도 없다. 아이는 심리적으로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벌거벗겨 버려진 상태다.

 

어머니가 없는 것과 비교하면 덜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것도 상당한 심리적 부재를 가져온다. 하지만 어머니가 충분히 따뜻하다면 아버지의 심리적 부재는 채워질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을 때 겪게 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환자들을 상담하게 되면 심리적 공허감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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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인간에게는 나를 규정하는 기억이 있다. 치매가 생겨서 모든 기억을 잊더라도 끝까지 남은 기억들은 이름, 생일,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같은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인생 기억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있어서 처음 형성되는 인생 기억은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는이다. 부모에 대한 인생 기억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기둥이 없는 것과 같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삶이 흔들린다. 복수를 꿈꾸기에는 너무나 허약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자식의 복수가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영화 속의 아버지와 실제의 아버지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완벽하고 자애롭다. 어머니가 부재한 상태에서 진심을 다해서 자녀를 돌본다. 부성과 모성이 결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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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그런데 현실의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거칠다. 피하고 싶은 존재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 아버지가 저렇다면 하면서 완벽한 아버지를 상상한다. 학대받는 아이 중에는 아버지가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아버지가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는 판타지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흔히 우리는 연애 상대로서의 이상형을 묻고는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 부모 이상형이 마음에 존재한다. 그런 이상형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러한 완벽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에는 부성과 모성이 결합된 완벽한 부모 이상형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등장한다.

 

현실의 아버지가 이상형 아버지 같았다면 아버지로 인해서 상처받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완벽한 이상형 아버지를 누군가 앗아간 것으로 설정한다. 아버지로 인해서 불행한 이들일수록 그러한 이상형 아버지를 죽인 이에 대해서 복수하는 주인공에게 공감이 더 가게 마련이다.

 

 

복수는 과거 회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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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그리고 영화 속 복수는 과거의 행복한 순간으로 회귀하기 위한 심리적 도구이기도 하다. 심리적 방어기제 중 하나로 무효화라는 것이 있다. 내 인생에 벌어진 끔찍한 일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tvN 드라마 <시그널>을 보면 주인공들이 과거와 교신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사건을 다시 뒤바꿔 놓는다. 불행이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성형수술을 받는 이들 중에서도 옛날 얼굴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과거의 얼굴로 돌아가면 그때 같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무효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살인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 범인이 살아있는 동안은 마음속에서 살인사건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서 불행에 빠진 주인공들은 살인자를 죽이면 부모의 죽음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판타지를 지닌다. 부모를 죽인 자를 죽여야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긴다. 범인이 애초에 없었다면 살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범인을 어떻게든 죽여 버리고 싶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살인범을 죽이는 순간 환상은 깨어지고 더욱 커다란 공허함이 밀려오게 된다. 어쩌면 자살로만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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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마지막으로 범인이 살아있는 한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서는 범인이 죽어야 한다. 범인을 죽인다고 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잊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범인이 죽지 않는 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부터 못 벗어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일단 범인을 죽인다. 하지만 복수를 하고도 여전히 트라우마로부터 못 벗어나는 경우 지옥 같은 삶이 이어진다. 원수가 죽는다고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행복한 인생이 되어야 원수를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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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속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의 복수를 시도한다. 희주(심은경 분)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대영(윤제문 분)은 동료의 죽음에 대해서, 기범(김성오 분)는 자신의 애인을 죽이고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친구에 대해서 복수한다. 그런데 이들 세 캐릭터를 보면서 나는 과거에 인간의 뇌를 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 뇌(뇌간), 감정을 담당하는 포유류 뇌(중뇌), 헌신을 담당하는 고차원 뇌 (대뇌피질)로 나누던 것이 떠올랐다.

 

기범(김성오 분)는 마치 파충류 같은 존재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그는 혀로 입을 핥는다. 그의 뱃가죽은 마치 파충류의 껍질 같다. 그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 본능에 방해되는 존재는 죽여 없앤다. 대영(윤제문 분)은 동료를 잃고 소리 내어 우는 한 마리 늑대 같다. 그는 무리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소중한 무리를 앗아간 이를 죽여서 복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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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희주(심은경 분)는 복잡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갈등한다. 그녀가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주지화(intellectualizaton)란 불편한 감정을 조절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추상적으로 사고하거나 일반화함으로써 감정적 갈등이나 내외적인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어기제다. 희주(심은경 분)가 기범(김성오 분)에게 쫓겨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어 달아난 후운동시간 끝이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주지화다.

 

희주(심은경 분) <니체>의 철학적 경구를 되뇌는 것은 주지화를 통해서 갈등을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의 아포리즘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만약에 철학적 경구를 자막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관객들에게 더욱 강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세븐>에서 7가지 악에 대한 응징이 차례로 전개되듯이 복수가 전개되었다면 철학적 맛이 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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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희주(심은경 분)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희주(심은경 분)가 아버지와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하고 딸기우유를 먹고 어린아이처럼 구는 것은 아버지가 사망한 나이에 심리적으로 고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 마음의 한 부분은 나약한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반면 살인자로서의 또 다른 내면이 존재한다.

 

이렇게 마음이 상반된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분리(splitting)라고 표현한다. 분리(splitting)가 더욱 심해지면 다중인격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다. 희주의 방을 보면 벽에 포스트잇, 바닥에 신문기사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집은 마음을 상징한다. 텅 빈 집은 텅 빈 마음을 의미한다. 복수를 제외하면 그녀의 마음은 텅 비었다. 복수만이 그녀가 살아가는 힘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그나마 그녀가 위로받는 것이 음악이다. 추상적인 클래식 음악이 그녀에게 최소한도의 따뜻함을 제공해 주는 대상물이다. 만약에 진단을 내린다면 그녀는 우울증 상태다. 그래서 온전히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원수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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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복수는 동시에 자살행위이기도 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만약에 희주가 하루에 한 알의 우울증 약을 한 달 복용했다면 70%의 확률로 그녀는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한 달 이후에도 그녀가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 경우 다른 항우울제로 바꿔서 하루에 한 알씩 한 달만 더 약을 복용했다면 또다시 70%의 확률로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복수를 꿈꾸는 경우 한 번 더 약을 바꿔서 한 달 더 복용했다면 또다시 50%의 확률로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매일 항우울제 한 알씩만 먹었더라면 3개월 이내에 95%의 확률로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복수를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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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널 기다리며> 스틸


심은경, 윤제문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가장 크게 떠오른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김성오다. 그가 영화 속에서 드러낸 배는 잊을 수 없다. 진짜 무슨 악어가죽 같았다.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최민식 분),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분), <몬스터>의 태수(이민기분), <살인의뢰>에서의 조강천(박성웅 분)과 같은 그간 한국 영화에 등장한 악역 중 단연 최고였다. <케이프 피어>에서의 로버트 드니로 이래 최고의 살인마 연기였다. 리얼하다는 점에서는 최고였다. 김성오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아마도 인생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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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개봉 시기가 늦어지면서 영화에 출연할 때는 무명이었는데 유명해진 이들이 형사 중에서 눈에 띄었다. 우선 <응답하라 1998>에서 김정봉 역을 맡은 안재홍이 미숙한 형사 역을 완벽하게 했다. 그리고 tvN 드라마 <시그널>을 통해서 낯익은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검사외전>에서 황정민의 오른팔 역을 했던 김원해도 보인다. <시그널>에서 안치수 계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정해균은 이번에는 안 형사가 아닌 유 형사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감독이 직접 극본도 썼다. 감독이 자신의 극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본인의 영화이니까 본인이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런 장점은 시각적 효과에서 두드러진다. 희주 방의 노란 포스트잇 벽 그리고 신문지로 도배된 바닥. 희주가 건물 옥상에 있는 장면, 기범(김성오 분)과 정민수(오태경 분)의 대결 장면 등은 압권이다.

 

반면에 자신의 극본이기에 필요 이상으로 원작에 충실하고자 하는 면은 단점이다. 타인의 각본이었다면 감독은 더욱 냉정하게 손을 봤을 것이다. 영화는 촬영하면서 상황이 다르게 전개된다. 캐스팅을 하다 보면 원작의 남주가 여주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배우가 예상외로 좋은 연기를 펼쳐서 분량을 확 늘려야 하기도 한다. 만약에 자신의 각본이 아니었다면 좀 더 자유롭게 손봤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각본인 경우 스토리에 미련이 남게 되고 일관성에 집착하게 되면서 오히려 영화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 모홍진 감독은 <우리 동네>라는 잘 짜인 스릴러를 쓴 경험이 있다. 이번에 <널 기다리며>에도 만만치 않은 반전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홍진 감독의 경우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만만치 않게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자신이 쓴 각본이 아닌 다른 작가가 쓴 각본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더 발휘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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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가장 남는 복수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십 대에 대한 복수로 인해 갈등하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올리비에는 5년 전에 범죄로 아들을 잃고 이혼을 한 후 혼자 살아간다. 그는 직업훈련센터에서 10대들에게 목공을 가르친다.

 

그런데 하루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10대 범죄자인 프랜시스가 교육을 신청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는데 하필 그날 전처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해서 재혼하려 한다. 자신만 불행 속에 내버려졌다는 생각에 올리비에는 프랜시스를 교육생으로 받아들인다. 프랜시스는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가 올리비에라는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매일 직업훈련을 받는다. 프랜시스는 올리비에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자신의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하루는 올리비에가 프랜시스에게 어쩌다 감옥에 갔는지 묻는다. 프랜시스는 살인 때문에 갔다고 대답한다. “왜 어린아이를 죽였느냐는 질문에차에서 라디오를 훔치려는데 아이가 뒤에 앉아 있어서 겁이 나서 목을 졸라 죽였다고 대답한다. “후회하느냐는 말에 프랜시스는감옥에서 5년이나 썩었으니까 후회한다고 대답한다. 아이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 올리비에는 분노하게 된다. 낯선 목재 창고에서 올리비에는 프랜시스에게 네가 죽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알려준다. 프랜시스는 미친 듯이 달아나고 올리비에는 프랜시스를 잡아 쓰러뜨린 후 목을 조른다. 그러다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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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들> 스틸

 

그러고는 둘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목재를 함께 나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복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닌 열린 결말로 끝난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다르덴 형제 영화의 특징이다. 결론 없이 흘러가다 흐지부지되는 현실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 영화 같지 않은 영화로 감동을 준다는 것이 더욱 대단하다. 배우 올리비에 구르메는 아버지 올리비에 역으로 2002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복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해서 평생을 복수심에 사로잡혀 사는 환자를 대하면서 이렇게 기억에 사로잡혀 사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망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수하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 그냥 살다 보면 잊히게 마련이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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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복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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