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태교의 도리를 옥판(玉板)에 써서 금궤(金櫃)에 넣어 종묘(宗廟)에 두어서 훗사람의 경계로 삼았단다. 그만큼 태교가 중요시되었다는 이야기다. 흔히 태교를 임산부만의 몫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270여 년 전 남성 중심의 조선에 살았던 여성 실학자 사주당 이 씨(1739-1783)는 “태교는 온 집안이 함께 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전제로 삼고, 태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태아를 만드는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승의
십 년 가르침이 어머니가 임신하여 열 달 기르는 것만 못하고, 어머니가 열 달 기른 것이 아버지가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태교신기
사주당 이 씨(1739
-1821)가 1800년(정조24)에 아기를 가진 여자들을 위해 한문으로 글을
짓고, 아들인
유희가 음의와 언해를 붙여 1801년(순조1년)에 이루어진 책이다.
태교신기의 배경을 보면, 말소리는 담장 밖을 넘어가서는 안 되고, 남편이 아무리 첩을 사랑해도
겉으로 내색해서는 안 되며, 박식하여도 아는 것을 티 내서는 안 되던 당대의 여성상과는 전혀 달라 기이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해도 좋다’는
것보단 ‘아니해야 한다’는 것이 태반이니, 임신이 족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태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사주당 이 씨가
그러지 않았던가. “뱃속의 자식과 어머니는 혈맥이 이어져 있어서 호흡을 따라서 움직이는데, 기뻐하며 성내는 것이 자식의 성품이 되며, 보고 듣는 것이 자식의
기운이 되며, 마시며 먹는 것이 자식의 살이 되나니, 어머니
된 자가 어찌 삼가지 않으리오(제4장 14절)”라고 말이다.
태교신기가 제안하는 임신부 생활법
1. 귀인(貴人), 호인(好人), 흰 벽옥(碧玉), 공작(孔雀)과 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것을 보아야 한다. 물이 넘치거나 화염에 싸이고 나무가 부러지거나 집이 무너지는 것, 병들고
상한 것, 더럽고 역겨운 벌레들은 보지 말아야 한다.
2. 음란한
풍류, 저잣거리의 떠드는 소리, 부인네의 잔걱정과 술 주정, 분하여 욕설하는 소리, 서러운 울음소리 등은 듣지 말아야 한다.
3. 공경으로서
마음에 두고 혹시라도 사람을 해치며 산 것을 죽일 마음을 먹지 말며, 간사하고 탐하여 도적질하고 시새움하며
훼방할 생각이 가슴에 싹트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4. 말할
때는 모진 소리를 하지 말며, 성나도 몹쓸 말을 하지 말며, 사람을
속이지 말며, 근거가 분명치 않은 말을 전하지 말며, 자기의
일이 아니면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
5. 임신부가
이미 아기를 가졌으면 부부가 함께 잠자리를 아니하며, 옷을 너무 덥게 입지 말며, 음식을 너무 배부르게 먹지 말며, 너무 오래 누워 잠 자지 말며, 반드시 때때로 가벼운 행보를 하며, 찬 곳에 앉지 말고, 더러운 곳에 앉지 말 것이다.
악취를 맡지 말며, 험한 곳을 건너지 말며, 무거운 것을 들지 말며, 노력이 지나쳐 몸을 상하게 하지 말며, 침이나 뜸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며, 탕약을 함부로 먹지 말며, 항상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하게 거처하여 온화하고 알맞게 하며, 머리·몸·입·눈이 하나와 같이 단정하게 하여야 한다.
6. 임신부는 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할 만한 일만 가려 해야 한다. 반찬 만드는 일을 조심하여 그릇이 떨어져 깨지게 하지 말며, 물과 국물이 찬 것을 손에 대지 아니하며, 날카로운 칼을 쓰지 말며, 자르기를 반드시 바르게 하여야 한다.
7. 잠잘
때는 엎드리지 말며, 몸을 굽히지 말며, 몸을 드러내 눕지
말며, 한더위와 한추위에 낮잠 자지 말며, 배불리 먹고 자지
말며, 만삭이 되면 옷을 쌓아 옆을 고이고, 밤의 절반은
왼쪽으로 눕고 밤의 절반은 오른쪽으로 눕는 것으로써 법도를 삼아야 한다.
8. 앉을
때도 단정히 옆으로 기울이지 말며, 바람벽에 기대지 말며, 두
다리를 뻗고 앉지 말며, 걸쳐 앉지도 말며, 마루 가장자리에
앉지 말며, 앉아서 높은 곳의 물건을 내리지 말며, 서서
땅에 있는 것을 잡지 말며, 왼편의 물건을 오른손으로 잡지 아니하며,
오른편의 물건을 왼손으로써 잡지 아니하며,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려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9. 임신부가
서거나 다닐 때는 한쪽 발에만 힘주지 말며, 위태로운 곳을 밟지 말며,
기울어진 샛길로 다니지 말며, 급히 달리지 말며, 뛰어
건너지 말아야 한다.
10. 임신부는
과일 모양이 바르지 않으며 벌레 먹은 것을 먹지 않으며, 썩어서 떨어진 것을 먹지 않으며, 익지 않은 열매와 푸성귀를 먹지 않으며, 찬 음식도 먹지 않으며, 빛깔이 좋지 않은 것을 먹지 않으며, 냄새가 좋지 않은 것을 먹지
않으며, 때 아닌 것을 먹지 않으며, 고기가 많아도 밥보다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식이
단정하기를 바라거든 잉어를 먹으며, 자식이 슬기롭고 기운 세기를 바라거든 소의 콩팥과 보리를 먹으며, 자식이 총명하기를 바라거든 해삼을 먹으며, 해산(解産)에 임해서는 새우와 미역을 먹는다.
11. 임신부가
해산에 당도하면 음식을 충분히 먹고, 천천히 다니기를 자주 하며, 잡사람을
만나지 말며, 아이를 돌볼 사람은 반드시 가려서 정하고, 아파도
몸을 비틀지 말며, 뒤로 비스듬히 누우면 해산하기 쉽다.
자식을 낳는 아버지의 도리
부부가 되거든,
매일 공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대하여야 하며, 행여 상스럽거나 우스갯소리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한 지붕 아래나 침상 위에 단둘이 있을 때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으며, 부부가 거처하는 방이 아니면 함부로 드나들지 말며, 몸에 질병이
있으면 잠자리를 같이하지 말아야 한다.
임신부를 대하는 도리
벗과 더불어 오래 있어도 오히려 그의 사람됨을
배우거늘. 자식이 어머니로부터 칠정(七情: 인간의 기본적인 7가지 감정. 즉, 희·노·애·락·애·오·욕)을 닮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임신부 곁에는 항상 선한 사람을 두어 거동을 돕고, 마음을
기쁘게 하며, 본받을 말과 법으로 삼을 만한 일을 귀에 끊임없이 들려줘야 한다. 그러고 나면 게으르고 사벽한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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