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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의 인문학, 나라별 파티 음식과 세레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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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시작은 새해 첫날이다. 사람의
시작은 생일이다. 태어난다는 것, 그것이 축복이든 재앙이든
그 시작점이 된 날은 특별하다. 해가 바뀌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 축하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또다시 한 사람의 주기가 시작된다. 세계의 생일 문화, 그 시작점과 의미에 대한 해석을 들어보자
한국의 생일, 환갑(還甲)
지금이야 한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높아져서 환갑의 의미가 퇴색했다. 해를
나누는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 만 60세가 되는 해이고, 과거에는
가장 큰 생일이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장수의 의미를 살릴 수 있고,
가족과 자손의 입장에서는 효를 다하고, 그 본분을 다하니 또한 좋은 의미의 생일이었다.
환갑잔치는 성대하면 성대할수록 좋다고 하여, 자식과 후손들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했으나, 현대에서는 그 의미와 규모 모두 찾아보기 힘들다. 재미있는 것은 먼 조선시대의 환갑 문화 중에 가족들이 부모에게 해주는 환갑잔치 이외에 각계각층의 원로를 우대하는
환갑 생일 기념이 있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스승의 환갑이 문하생과 제자들에 의해서 베풀어지고 예능계나 기술계·종교계, 그리고 특수집단(보부상·거지)에서는 지도자나 두목의 환갑이 사사자(師事者)·도제(徒弟)·계승자·추종자에 의해서 치러진다. 이런 경우의 비용은 각자의 출연금으로써
충당됐다고 한다.
정신적인 스승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그 권위와 모범이 되는 원로에
대한 존경심이 들어간 이러한 문화는 인상적이다. 사회 원로에 대한 자발적인 존경과 애정의 표시는 효율성만
강조하며 원로가 없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법도 하다.
독특한 생일 음식
중국에서는 생일에 먹는 길이가 긴 면을 장수면이라 하였는데, 그 길이만큼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어르신들의 생일에는 복숭아 모양의 ‘쇼우타오’라는 밀가루 음식을 주는데 이 역시 장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계란과 우유, 럼주, 소금으로
간을 한 반죽으로 구운 크레이프를 만든다. 이를 생일을 맞은 이가 다른 이의 접시에 정확히 올리면 부자가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는 풍습이 되어 새해 첫날과 생일날 행해지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모든 식구가 집에 모여 함께 생일을 즐긴다고 한다. 집에서
뷔페식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생일을 보낸다. 일종의 통돼지 바비큐라
볼 수 있는 ‘레쳔 가왈리 (Lechong Kawale)’라는
음식은 필리핀 사람들이 생일에 특별히 준비하는 음식이다. 가족과 공동체 소통의 문화를 중시하는 필리핀
생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일에 먹는 생일 케이크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이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일 케이크의 개발은 요리와 과자류의 커다란 진보를 이끌어 왔다. 이후 18세기 독일에서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해하기 힘든 생일 세리모니
스페인 사람들은 생일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들은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스페인에서는 “생일
축하한다”라는 축하의 말과 함께 생일자의 귀를 잡아당기는 풍습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는데, 나이만큼 귀를 잡아당겨야 한다고 하니, 노인학대로 비칠 법도 하다.
벨기에의 생일에도 특이한 세리머니가 있다. 생일을 맞이한 아이는 친구들에게
과자 등의 작은 선물을 준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 또는 선생님은 아이에게 종이 왕관을 만들어서 씌워준다. 그 왕관에는 나이만큼 꽃이나 새의 깃 장식이 되어 있다. 왕관을
쓴 아이에게 축하 노래를 불러준 후에 높이 안아 올리는데 그 또한 나이의 수만큼 되풀이한다고 한다.
남미의 엘살바도르에서는 생일날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커다란 종이 인형을 만들어 그 안에 사탕을 넣어 둔다. 그리고 생일인 아이가 종이 인형을 마구 부수어서 안에 있는 사탕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친구 초대의 의미
교황 프란치스코는 77세 생일에 4명의
친구를 초대했다. 신의 대리자라 불리며,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교황에게 선택받은 4명의 친구는 누구일까? 이들은 로마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의 노숙인 4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주인과 함께 교황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파티가 벌어지고, 노숙인 3명은
교황에게 해바라기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신은 우리의 사랑을 보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특히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4월 24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한 강론 中
그 무엇을 먹고 어떤 세리머니를 하든 생일은 즐겁다. 교황이 만났던 4명의 노숙인과 한 마리의 반려견, 귀를 잡아당기는 스페인의 세리머니, 사회 원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했던 조선시대 환갑문화가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 인생의 시작이 공동체를 이루는 계기가 되고, 문화를
만들어 사랑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생일 문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참고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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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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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낯선 화가, 변월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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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16년
연해주 쉬코도프스키의 유랑촌에서 태어났다. 오랜 시간 러시아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53년 한국에 왔다. 민족 반역자로 불리어 다시 한국에 올 수
없었고 평생 고국을 그리워한 그가 한국에 머문 시간은 불과 1년 3개월뿐이다. 그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소나무, 금강산, 그리고 민족의 모습이었다.
고국의 모습을 담다
변월룡은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소련정부의 파견원으로서 북한의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고 그곳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판문점에 들렀을 때 포로 교환의 현장을 보게 된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한국의 첫인상이 전쟁 직후의 황폐함이었다.
전쟁의 희생양이 된 고국의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소련과 북한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소련 국적의 그가 다시 고국에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평생 고국을 그리워했지만, 다시 올 수는 없었던 화가 변월룡.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고국의 작품들은 더 쓸쓸하게 보인다.
변월룡(Пен Варлен) 1916-1990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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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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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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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무서운 현실의 로맨스들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할 때 사랑 영화가 당긴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구원받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선 드물지만, 영화에선 남녀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절절한 로맨스를 완성한다. 과연 제정신일까? 본지의 시네마칼럼을 통해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온 최명기 박사와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파헤쳐봤다.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는 깔끔하고 밝아서 느낌이
좋았다. 각진 직선과 사각의 프레임들이 교차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안쪽 상담실로 안내받았을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천 장은
될 법한 음악 CD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DVD 컬렉션. 소량의 LP판과 턴테이블이 다가올 인터뷰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해주었다. 미소를 띠면서 인사하는 최명기 박사의 시네마테라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Q 음악, 영화 컬렉션이 대단하다. 환자와의
상담 시 활용되는지?
개인적으로 틈틈이 모은 것인데, 나에게 있어서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내방하는 환자들과
상담하면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증상에 맞는 영화들이 있다. 진료나
상담 중에 내용을 설명하며 권하고, 그다음 진료 때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Q 시네마테라피가 임상적으로 환자분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신적으로 정화되는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영화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감정을 몰아가는 방법에선 탁월하다. 시각적, 청각적인 측면에서 전달도 잘되고… 물론 시네마테라피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맞춰가며 같이 몰입하고 소통하면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감과 보고 나서의 행복한 여운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테라피가 아니겠는가?
Q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그런데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들도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남들도 싫어하기 마련이다. 자기에게 정말 딱
맞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대부분 남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필이 꽂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Q 그래도 영화에서는 좀 비호감적인 경우에도 사랑에 빠지곤 한다.
캐릭터가 그렇긴 해도 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용모에 대한 부분은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문화적 영향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때는 주로 생산성에 맞춰 상대를 본다고 한다. 원시시대
때부터 남자들이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가슴을 보고 나이를 가늠했다고
한다. 가슴이 처졌나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말이다.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머릿결의 영양 상태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를 볼 때 10분
안에 결정한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천 년의 역사가 깔려있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예쁘다는 것은 밸런스가 제대로 된 것이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볼 때 용모도 중요하지만 이미 들은
평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본 사랑도 있지만, 귀로
들은 사랑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역시 용모가 중요하다. 평판은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하다보면 우울증이나 조증, 정신분열증을 앓고 계신 분들이 사랑에 잘 빠진다. 아무래도 불안하고
외로우니까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애정망상이 있는 거다. 또
경계성인격장애라고 하는 증상이 있는데, 이런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참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사랑에
빠지게 된다.
Q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로맨스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다들 속기 쉬운 영화다. 이 영화를 굉장히
수준 높은 영화라고 하는데 사실 전형적인 구애영화다. 동물이나 곤충들이 관계를 맺기 전에 춤을 추고
구애를 하듯이, 이 영화도 남녀가 밤새 밀고 당기며 사랑을 확인하려 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결국 두 주인공 남녀가 잤느냐 하는 거다. 영화는
두 남녀가 관계를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서로 한방이 부족한 거다.
Q 하지만 에디터가 <비포 선라이즈>를 좋게 본 것은 남녀 사이에 관계 없이도 멋지게 대화하고 밀당하며 감성을 소통해내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낯선
곳에서의 남녀 사이라는 환경도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관계가 관여되지 않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투사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내용은 남녀 간의 구애인데, 그것을 순수한 사랑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게 재미있다.
Q 그럴 수도 있겠다. 마지막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영화 마지막에 햇빛에 의해 두 주인공이 다녔던 비엔나의 장소들이 다 드러나는데, 그 시퀀스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토록 로맨틱한 장소들도 결국 사람
사는 현실의 공간이란 점이 서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말이다.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도 재미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첫눈에 반해 사랑하다 징글징글한 그 사랑을 회피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는 게 큰 설정이다. 그런데 그 이후 두 남녀가 다시 만났을 때 또 사랑하게 된다.
기억을 지워도 서로를 사랑했던 느낌이나 이런 것은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추억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심리학에서는
뇌에 남아서 영향을 준다고 본다. 기억이 남는다는 것은 완벽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볼 때
<이터널 선샤인> 속 커플은 매우 역설적이다.
서로가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기억을 지우는데, 사실 서로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 편이 더 좋다. 기억을 지우지 않아야 서로에 대한 안 좋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거다(웃음). 영화 속 커플은 기억을 지우는 순간
다시 만나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Q 위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안 좋은 기억은 이별할 때 꼭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두 영화는 청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혹시 불륜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가?
다이안 레인의
<언페이스풀>이라는 영화가 있다. 행복한
유부녀가 어느 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다. 나라마다 외도 통계라는 것이 있다. 보통 남자의 외도율이 40% 정도 된다고 하고, 여성의 외도율인 20% 정도 된다고 한다. 외도는 선천적인 영향도 있는데, 5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현실의 배우자와의 관계가 숨 막혀 참을
수 없어 외도를 하는 타입이다. 부부지만 서로 마음의 거리가 다르다.
두 번째는 환상형인데 자신의 삶이 잘 안 풀리면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다.
세 번째는 두 집 살림 형인데 이 타입은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내와 헤어지면 바람 피우는
여자와 재혼할 것 같지만, 다시 아내와 같은 여자와 재혼한다.
넷째는 중독자형인데, 이런 경우는 부인이 맞춰줄 수 없으니까 밖에서 해결하는 거다. 끝으로
여자가 주축이 되는 외도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우울증이 있는 경우이고 <언페이스풀> 같은 영화가 그런 경우다. 바람이 심한 날, 다이안 레인의 우울한 마음이 든 외도로 연결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Q 그런데 현실적으로 연애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감정만으로 어려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맞다. 보통,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는 예쁘고 성격 좋으면 바로 사랑에 빠진다. 당연히
못생기고 성격 안 좋으면 싫어한다. 둘 중의 하나가 좋고 하나가 안 좋으면 갈등하면서 고민하게 된다.
여자도 남자의 재력과 성격 둘을 가지고 판단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는 신의 사랑과 유사하기에 더 빠져들고
동일시한다.
사람들은 결국 폭력영화나 사랑영화, 둘 중의 하나를 보는 것 같다. 폭력은 억지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카타르시스로 푸는 것이고 사랑영화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환상을 주는 이유가 크다.
Q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고 들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도 그렇고,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대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를 보통 심리학적으로는 ‘망상’이라고
한다. 약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헷갈리는 것이다.
이병헌의 경우는 대상이 한 번 바뀌지만, 한효주의 대상은 매일 바뀌는 경우다. <뷰티 인사이트>에서 한효주가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을 영화의 처음이라고 생각하면 위의 해석이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과대망상이 있으면, 사물을 바로 보기 힘들고 점차 본래의 형태를 잊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이 시력을 잃으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잊게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이 변형되어
가는 것이다.
Q 듣고
보니, 현실에서의 사랑은 쉽지 않다.
거기에 영화를 보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꾸고 싶어 한다. 현실을 뭉개고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대상과 마음껏 울고 웃고 대리만족을 누리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Q 영화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금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더욱더 영화에 집착했었다. 그것은 내가 굉장히 이성적인
인간이라 감성을 다루는 영화를 통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환자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언론에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말이다.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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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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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통치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 내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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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은 개봉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과 맞물리기도 했고,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와 영화의 짜임새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진짜 흥행 요인은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신분상승과 그 덧없음을 통쾌하게 묘사해낸 때문이 아닐까? 본격 정치영화라기보다는
불황과 사회불안이라는 양날의 검에 당하고 있는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말도 많고 비능률적인
것 같지만 새로운 인재가 지속적으로 지배계층에 편입되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예전에 중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참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이 있었다. 제국의 전성기가 100년이 넘지 않는 것이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했지만, 진시황제가 사망한 후부터
삽시간에 몰락한다.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한 수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경우, 국가의 수명은 오래갔지만, 그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원나라 역시 칭기즈칸이 엄청난 영토를 확보했지만, 전성기는 100년을 넘지 않았다.
청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그런데
국가의 몰락을 보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간신이다. 권모술수에 능한 간신들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면서 몰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이들은 통치 엘리트에서 배제된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파레토는 엘리트의 타락을 통해서 국가의 존망을 설명한다.
통치 엘리트와 비통치 엘리트
파레토는 모든 사회는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대통령후보, 재벌회장, 신문사주간, 검사는 엘리트다. 그들과
비교할 때 일반시민들은 비엘리트다. 파레토는 노력만으로 엘리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타고난 정신적, 심리적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현재 엘리트의 자질이 있다고 해서 그 자식들, 그 손자들도 엘리트의 자질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엘리트는 자신의
자녀가 엘리트의 자질이 없더라도 지위를 유지하게끔 폐쇄적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질이
있는 비엘리트가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차단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대중을
경멸한다. <내부자들>에서 이강희(백윤식 분)가 대중은 개, 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이 말이다. 그런데 엘리트가 순환되지 못하고 자질이 없는 무늬만 엘리트가 지위를 유지하다
보면 통치능력이 저하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런데 파레토는 사회를 엘리트 계급과 비엘리트
계급(대중)으로 나눈 후 엘리트 계급을 또다시 통치 엘리트와
비통치 엘리트로 구분한다. 통치 엘리트는 국가의 통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대선후보 장필우(이경영 분)와 재벌회장 오회장(김홍파 분)은
통치 엘리트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강희(백윤식 분)는 그들을 위해서 일을 꾸미지만, 아직은 비통치 엘리트에 불과하다. 그는 언론인이라는 비통치 엘리트에서 총리, 장관 같은 통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 온갖 비열한 일을 도모한다.
검사인 우장훈(조승우
분) 역시 그러하다. 그는 경찰이라는 비엘리트였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었기에 경찰로서는 엘리트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검사가 되어 엘리트 그룹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족보가
없기 때문에 통치 엘리트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대선후보 장필우(이경영 분)라는 통치 엘리트를 잡아서 자신이 통치 엘리트가 되는 기반을
쌓고자 한다. 장필우(이경영 분)가 술자리에서 자신이 젊어서 어떻게 부패한 고위 선배 검사를 체포했는지 얘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장필우(이경영 분) 역시
기존의 통치 엘리트를 공격하면서 새로운 통치 엘리트 자리에 오른 것이다.
통치 엘리트가 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론
엘리트 자질이 있는 이들이 통치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면 분노가 누적된다. 그들은 대중을 선동한다. 그들이
노조의 지도자가 되면 경영진과 싸우게 된다. 진입이 차단되어서 엘리트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능력은
엘리트보다 못할 것이 없다.
좋은 집에 태어나서 자질이 없어도 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는 오히려 비엘리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엘리트의 자질이 있음에도 엘리트가 될
수 없는 이들은 대중을 위해서 반항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 대중은 명분일 뿐이다. 사실은 자신이 통치 엘리트가 되고 싶은 것이다. 우장훈(조승우 분)이
그러하다. 때로는 엘리트가 되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안상구(이병헌 분)가 그러하다. 잔인하고
공격적이지만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이 가난하게 자란 그는
엘리트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범죄자가 된다.
만약에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의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파레토의 엘리트 순환론에 따르면 능력이 없는 엘리트 계층이 능력 있는
엘리트로 교체되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 러시아의
절대왕조가 무너진 것도 지배계층이 무능력하고 부패하였는데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아서다.
민주주의 국가는 말도 많고 비능률적인 것 같지만
새로운 인재가 지속적으로 지배계층에 편입되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반면에 독재국가는 일시에 무너진다. 시리아가 무너진 후 IS가 지배하게 된 것 같이 말이다.
<군도>와 <내부자들>의
평행이론
나는 내부자들을 보면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가
떠올랐다. 군도에서 조윤(강동원 분)은 지주인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다. 그는 엘리트 계층에 속하기 위해서
무관이 된다. 하지만 무관이라는 한계, 서자라는 한계 때문에
통치 엘리트가 되지 못한다. 그는 통치 엘리트가 되기 위한 수법을 바꾼다.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땅을 빼앗은 후 그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려서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가 된다.
<내부자들>에서 오회장(김홍파 분)이
장필우(이경영 분)와 이강희(백윤식 분)를 마음대로 부리듯이,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조윤(강동원 분)이 마을수령과 관군을 마음대로 부린다. 그런데 <내부자들>에서는
엘리트-비엘리트(대중)간의
기본적인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장훈(조승우 분)이 무능력하고 부패한 엘리트 장필우(이경영 분), 오회장(김홍파 분), 이강희(백윤식 분)를 제거한다. 그들이
제거된 자리를 보다 나은 다른 엘리트가 차지하면서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엘리트-비엘리트
간의 순환이 차단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란이 일어난다. 땡추(이경영 분)는 지적능력이 있고 계획력이 있다. 두목인 대호(이성민 분)는
리더십이 있다. <내부자>에서 조폭 두목 안상구(이병헌 분)가 그러했듯이 대호 역시 통치체제에 편입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을 이끌고 반란을 시도한다. 반란이 성공하면 그들이 통치 엘리트가 될 것이다. <내부자들>과 <군도: 민란의
시대> 사이에는 이렇게 묘한 평형이론이 펼쳐진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두 영화 모두 제작과정에 쇼박스가 관여하고 있다.
현실적이고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 <내부자들>
내부에 들어가서 상대방을 방심하게 한 상태에서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은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진다. <성난 변호사>도
그러했다. <내부자들>에 미래자동차 오회장이 존재했듯이 <성난 변호사>에는 제약그룹 조회장(장현성 분)이 등장을 한다.
<내부자들>에는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이 등장하고 <성난 변호사>에는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등장한다. 둘 다 법조인이다.
<내부자들>에서는 우장훈(조승우 분)이
내부고발을 한 후 검사를 포기하고 변호사로 개업한다. <성난 변호사>에서는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내부고발을 한 후 로펌에서 쫓겨나 변호사로 개업한다. <내부자들>에서는 방계장(조재윤 분)이
검사를 돕고, <성난 변호사>에서는 박사무장(임원희 분)이 변호사를 돕는다. 누가
주체가 되어서 계획을 만드는가는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억울하게 갇힌 범죄자가 존재한다.
<내부자들>에서는 조폭 두목 안상구(이병헌 분)가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으로
하여금 내부에 침투하도록 계획한다. <성난 변호사>에서는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억울하게 갇힌 경호 직원 김정환(최재웅 분)에게 자신의 내부 침투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두 영화는 플롯 상에서는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부자들>의 캐릭터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치밀하다. 거기에 영화 완성도의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것이다.
<성난변호사>는 변호성(이선균 분) VS 조회장(장현성 분)이 단순한 선악 구도로 대결한다. 그런데 <내부자들>에서는
캐릭터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재계, 정계, 언론계, 세 개의 악의 축을 대표하는 세 명이 등장한다.
그들이 추구하는바, 처한 입장은 같은 듯 다르다. 중간에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언론주간 이강희(백윤식 분)가 등장하는데 백윤식이
최고의 명연기를 펼친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측으로는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과 안상구(이병헌 분)
두 명이 등장한다.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의 동기 중 하나는 ‘출세’다. 또 다른 동기는 자신의 야망을 좌절시키는 파워 엘리트 체제에
대한 ‘울분’이다. 안상구(이병헌 분)의 동기는 ‘개인적
복수’다. 이렇게 현실적이면서 잘 짜인 캐릭터를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연기한다.
영화를 빛낸 배우들의 캐미
영화 <타짜>(2006)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백윤식과 조승우는 <내부자들>에서는 적으로 만난다. 그런데 평경장과 고니였을 때와는 또 다른
캐미를 보여준다. 우장훈(조승우 분)이 이강희(백윤식 분)를
심문하는 장면은 <내부자들>의 모든 주제가 드러나는
명장면이다. “보여진다”와
“매우 보여진다”를 가지고 하는 수사학적 대화는 백윤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명연기다.
이병헌의 복수 연기는 과거에 <달콤한 인생(2005)>에서 두목에게 버림받은 조폭 선우가
펼쳤던 액션복수에 드라마 <올인>에서 김인하가
펼친 지적복수를 합친 연기였다. 액션과 성격표현을 동시에 하는 배우란 영화계에서 확실히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거의 개근상을 찍듯이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이경영이 위선적인 정치인 역할을 깔끔하게 연기한다. 전라노출 연기를 마다치 않는 열정을 보인다.
그리고 영화계 개근상에 도전하는 또 다른 배우가
있으니 이병헌의 지시를 받아서 작전하다가 적발되어 죽을 고생을 한 박종팔 사장 역할을 한 배성우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나열하면 <베테랑>, <특종: 량첸살인기>, <더 폰>,
<오피스>, <빅 매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의 한수>, <인간중독>, <몬스터> 등등이다. 이쯤 되면 인간이 아니다. 로봇이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는 스케줄이다. 어쩌면 아바타가 동시에 여러 영화에서 연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본다.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천만 배우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영화의 뿌리는 그리스 비극
정치영화의 뿌리를 거슬러 가면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지금에 와서 보면 분장이며 무대부터 현재와 관련이 없는 과거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보았다고 가정하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흥분하고 슬퍼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역시 정치가 가장 주된 소재다.
<햄릿>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당한 왕자의 복수극이다. <오셀로>는 전쟁에서 거듭된 승리를 거둔 비엘리트 무어인이 장군이 되면서 귀족의 딸과 결혼해서 통치엘리트가 되었다가
무너져 내리는 스토리다. 맥베스는 왕족이 아닌 이가 왕위를 찬탈하는 쿠데타 영화다. 그동안 로만 폴란스키, 구로자와 아키라와 같은 거장의 손길을 거쳐서
영화화되었다. 최근에는 저스틴 커젤 감독,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엘리자베스 데비키, 숀 해리스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개봉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기반으로 한 영화 중에서 <리처드 3세>는
시대배경을 1930년대 영국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안 맥컬런이 독재자 리처드 3세 역을 맡고 아네트 베닝이 엘리자베스 여왕역을 맡았다. 비통치
엘리트 리처드 3세가 권모술수를 통해서 왕위에 올랐다가 비엘리트인 민중 리치몬드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맡는다.
기억에 남는 정치영화의 고전
쿠데타를 다룬 현대영화로는 <파워 플레이>가 기억에 남는다. 쿠데타 입문서(Coup d'État: A Practical Handbook.
1968)라는 전문서적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Power Play>(1978)에는
정권을 잡고자 하는 3명이 등장하는데 명배우 피터 오틀(Peter
O'Toole), 데이빗 헤밍스(David Hemmings), 도널드 플레젠스(Donald Pleasence)가 각각 주연을 맡았다.
누가 과연 승자가 될지 예측 불가능한 파워게임이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반전이 끝내준다. 쿠데타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못하다가 김영삼 정부 때 국내 개봉이 되었다. 군사정권의 쿠데타 주체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면서 개봉 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프랑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는 1939년에 개봉한 정치영화의 고전이다. 영화는 워싱턴 정치권을 풍자한다. 상원의원이 임기 중 숨을 거두자
주지사가 갑작스럽게 후임자를 물색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용하기 편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정치라고는 모르는 소년단 지도자 제퍼슨 스미스를 상원의원으로 지명한다. 워싱턴의 기존 국회의원들은 대놓고
스미스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는 불의에 맞서 자신의 법안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의회에서 24시간 의회 발언을 하다가 쓰러진다. 필자는 정치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유럽 영화 중에서는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가 대표적인 정치영화다.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정권이 영화의 배경이다. 파시스트가 되어서
권력에 접근하던 주인공이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몰락하는 내용이다. 통치와 민중 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는 <당통>도 잊을 수 없다. 프랑스 대혁명이 배경이다.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당통역을 맡았다.
절대왕정이 무너진 후 누가 통치를 할 것인가를
두고 혼란이 벌어진다. 로베스피에르는 최하계층을 등에 업고 공포정치를 펼치려고 하고, 당통은 부르주아의 지지를 받으면서 관용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당통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민중이 공포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되면서 로베스피에르도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비뚤어진 정치판, 짐승의 역사
국내에서는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정치영화는 터부시되던
소재였다. 유신정권 치하에서는 현 정권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암시되면 상영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감독과 배우가 곤욕을 치르고는 했다. <서울무지개:
1989>는 그런 점에서 정치권을 부정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였다.
유라(강리나
분)는 스타가 되고자 하는 배우지망생이다. 권력이 있는 어르신이
스폰서가 되면서 유라(강리나 분)는 스타가 된다. 그런데 어르신은 그녀의 모든 생활을 통제한다. 그런 생활로부터 탈출하고자한
유라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그 이후 김현명 감독, 정보석, 이영하 주연의 <서울의 눈물>을
비롯한 정치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영화 <내부자들>의 영어 제목은 <Indise men>이다. ‘내부자 고발’이라고 할 때 쓰이는 의미에서의 ‘내부자’다. 하지만 내부자들이라고
하니까 단수가 복수가 되면서 또 다른 의미가 연상된다. ‘외부자들은 모르는 정보를 내부자들은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부자들끼리 권력을 나누고, 내부자들끼리 이익을 나눈다. 파워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들은 이너서클(inner circle)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너서클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국민들은 절망한다.
그러다 보니 <암살>, <베테랑>과 같이 이너서클을 비판하고 복수하는 영화가 성공하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헬조선”에 대한 분노를 카타르시스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매트릭스>
역시 변형된 정치영화다. 내부자들이 외계인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정치투쟁 하는 대신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파워엘리트들은 본인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항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고 똑똑한 주인공도 결국 끝없이
밀려오는 좀비들을 이기지 못하듯이 대중의 힘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마르크스는 정치에 있어서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얘기하느냐”를 봐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구속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둔한 엘리트의 생각보다
국민은 항상 더 현명하고 강하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정신과전문의,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저서 <시네마테라피>, <걱정도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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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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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속 담백한 사진의 멋스러움, 천재 사진가 허브릿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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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은 늘 흑백 속에 있다. 이 무채색 사진들은 담백하며 절제미가 돋보인다. 화려하기보단 깨끗한
허브릿츠의 사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사진들은 조용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1952년, 허브릿츠는 로스앤젤레스 브랜우드에서 가구사업을 하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배우 스티브 맥퀸의 옆집에 살면서 여러 배우와 친분을 맺었다. 바드대학에서
경제학과 미술학을 전공한 후 아버지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중, 우연히 여행에서 친구를 찍은 사진이
패션 매거진들에 실리면서 정식 사진가가 된다.
그리고 친구였던 리차드 기어는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허브릿츠는 보그, 엘르, 인터뷰, 하퍼스 바자 등 다양한 패션 매거진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돈나, 마이클 잭슨 등의 사진을 찍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그 후 명품 브랜드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약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가 된다. 이후 에이즈에 걸렸던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2002년, 5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신체를 예술로 끌어올린 20세기 최고의 패션 사진가
천재 사진가 허브릿츠. 스타들의 사진부터 명품 패션 화보, 특히 신체를 소재로 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는 르네상스와 그리스·로마시대의 영향을 받아
사람의 몸을 조각상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허브릿츠는 사람의 신체를 예술의
한 분야로 끌어올렸다.
세기의 아이콘을 만드는 천재 사진가
배우 리차드 기어부터 그와 함께 작업했던 작품들의
배우는 스타를 넘어 아이콘이 되었고, 많은 스타가 그와의 작업을 꿈꿨다. 명품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샤넬, 베르사체, 캘빈클라인, 발렌티노, 조르지오아르마니 등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다양한 뮤직비디오
역시 연출했다. 마돈나, 크리스 이삭, 브리트니 스피어스, 머라이어 캐리 등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클래식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시대의 감각을
한 작품에 담아낸 천재 사진가
그의 작품들은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정돈된 느낌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들의 사진이지만, 사진 속에서 스타
외에 다른 무엇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침착하고 세련됐다.
사진제공 사진기획전문회사 디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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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