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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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볍게 즐기는, 파티 문화
    소모적인 파티의 시대는 갔다. 파티의 흥겨움과 함께 서로에게 유익함이 있는 시간을 만드는 모임으로 진화되어 가고 있다. 멋진 1인 파티어(partyer)들이 모여 하나의 근사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각자가 가진 재능과 개성을 서로 나누는 신개념 재능 나눔 파티가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프리 펠로우 파티 프리 펠로우 파티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고 있다. 처음엔 아는 지인들 몇몇이 모여서 시작된 친구들의 소박한 모임이었다. 친구가 친구를 데려오는 파티. 친구로 연결되어 있으니 검증된 친구들이다. 이제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으로 발전되었다.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움도 없는 해피한 사람들의 해방구. 삶의 불편한 관계를 이날만큼은 내려놓고 긴장을 풀 수 있다. 프리 펠로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라운지바 도일. 이날 사장님도 파티의 멤버가 됐다. 마음을 열고 흔쾌히 함께 즐긴다. 오늘만큼은 사장이 아니라, 익명성 속에 파묻히는 파티 멤버로서 즐기면 된다. 영화감독도 촬영이 없는 날, 출연하는 주연배우 손에 이끌려 나왔다. 새로운 친구들 사진 몇 장 찍어주다가 포토그래퍼로 이름까지 올렸다. 외국계 보험회사 간부도 오늘만큼은 부담 없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머리가 희끗한 유명 건축사무소 CEO도 여기서는 친구다. 올 한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일한 멤버들. 회사의 회식도, 가족들의 모임도, 오래된 친구들의 넋두리도 좋지만, 더 편하게 즐기고 싶은 그런 크리스마스. 전화 한 통이 반갑고 정겹다. “그냥 와서 즐겨. 편하고 부담 없게!” 그 멘트가 귓가에 윙윙거리고 어느새 발걸음은 파티로 향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재능과 개성을 나누는 희망 파티! 프리 펠로우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다. 밝게 웃으니까 정말 좋다! 미소가 좋고, 정겨운 인사가 따뜻하다. 웃을 일이 없었는데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가 좋다. 그 미소엔 부담이 없다. 예쁘다고, 멋있다고 말해주면 되고, 큰 기대 없이 다가오는 펠로우들의 가벼운 반응이 즐겁다. 스타일도 다양하다. 드레스 차림에 헤어까지 신경 쓴 분도 있고, 편하게 스웨터를 걸친 친구도 있다. 패딩에 모자를 눌러쓰고 와서 여유 있게 샴페인 잔을 들어도 좋다. 크리스마스니까, 즐거운 홀리데이니까 숨을 돌리고 샴페인 잔을 기울여 보자. 평소에 보지 못하는 소년, 소녀 같은 표정들을 눈여겨 보다보면, 예전이 그립기도 하다. 복고를 부르는 정서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이 짠하다. 미용과 뷰티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건강한 피부를 지키기 위해 서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즈음, 파티에 참석하신 몇몇 병원장님의 외출 시 뷰티 어드바이스는 아주 유용한 정보다. 사람이 좋다, 희망을 이야기하자! 외국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여기는 강남구 압구정동이 아니다. 프리 펠로우 파티 해방구. 어울리고 나누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곳이다. 진창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파티는 이제 그만! 누구시냐고 물을 필요도 있다. 이름도 몰라도 된다. 그런 것들은 다 허명이다. 그 사람에게 부여된 기호나 겉치레를 벗겨버리자. 있는 그대로의 그들이 좋다. 고지식할 것 같은 그분도, 고집 셀 것 같은 그녀도, 낯을 가리는 그 친구도, 조금 오버하는 친구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한다. 절친이 아니면 어때? 셀카 속에 추억으로 남는 친구가 좋은 거고, 진한 블러디 마티니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가 상큼하니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순백의 나로 돌아가 편견 없이 친구들을 사귀는 내가 되고 싶다. 한쪽에선 헬스트레이너와 음식점 CEO의 건강 관련 대화가 주목을 끈다. 매일 바쁜 일과를 소화하면서 운동 부족, 불규칙한 식사문화로 건강에 대한 염려가 높은데, 전문가들이 포인트를 찍어주며 신년에는 건강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프리 펠로우 재능기부 파티라더니, 이런 팁들이 곳곳에 재미 만점으로 숨겨져 있다. 너의 재능이 아름다워! 파티 멤버의 멋진 노래와 무대 매너에 흥겨워진다. 그리고 파티의 소중한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주는 김우희 영화감독. 과묵하게 앉아서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중년의 신사까지. 우리가 행복한 건, 우리가 가진 희망의 재능을 나누기 때문이다. 잘나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건강하고 싶으니까, 예뻐지고 싶으니까, 내가 가진 소박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일 뿐.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 게 아쉽지가 않다. 내년에도 더 많은 친구, 더 훌륭한 프리 펠로우들을 만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이 정답이다. 만나서 즐겁게 나누고, 예쁘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프리 펠로우 파티는 재능과 개성을 나누는 파티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포토그래퍼. 김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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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0
  • 멕시코 미술의 두 거장,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반평생을 함께한 부부이자 서로에게 크나큰 예술적 영향을 미친 예술가이다. 두 개성 강한 작품관으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킨 그들의 작품을 만나본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주역 ‘디에고 리베라’ 신체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 글보다는 그림으로 국민을 계몽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디에고 리베라는 작품을 통해 멕시코인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미국의 자본주의자들과 멕시코 상류층을 풍자한 반면, 민중들의 일상은 애정 어린 부드러운 터치로 담았다. 또한, 아즈텍과 마야문명 시대를 미화한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디에고 리베라가 활동적이고 문란한 사생활을 즐겼던 반면, 21살이나 어린 아내 프리다 칼로는 어렸을 때부터 신체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열여섯 살 때는 교통사고로 척추와 오른쪽 다리, 자궁 등을 다쳐 평생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버스’, ‘헤리 포드 병원’, ‘부러진 척추’ 등의 수작을 남겼다. 프리다 칼로로 일기장에는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육체적 고통으로 얼룩진 그녀의 성장 과정과 삶에 대한 애착 등을 엿볼 수 있다.
    • 문화/예술
    2023-05-24
  • 슈퍼히어로도 사는 게 괴롭다,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슈퍼히어로는 아이들을 위한 코믹북에서 유래했다. 아이의 상상력은 어른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상상 속 친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슈퍼히어로 만화를 볼 때 완전히 몰입한다. 우리는 마징가 제트, 그랜다이저, 태권브이를 보면서 컸고 미국인들은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를 보면서 성장했다. 아이들은 자신과 만화 속 슈퍼히어로를 동일시한다. 그들만큼 강해지기를 바란다. 학교나 집에서 야단맞거나 친구가 괴롭히는 등 괴로운 일이 생기면 슈퍼히어로를 떠올린다. 마치 자기가 슈퍼히어로가 된 것처럼 상상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어렸을 때 마징가 제트, 그랜다이저, 태권브이를 보면서 고통을 이겼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러한 만화 속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마법의 힘이 점점 약해진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우리는 과거로 퇴행하면서 어릴 적 봤던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을 떠올린다. 슈퍼히어로는 약한 인간의 모델? 슈퍼히어로도 제각각 개성이 있다. 슈퍼맨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슈퍼맨은 무슨 일이든지 가볍게 해결한다. 배트맨은 악과 싸우기 위해서 존재한다. 배트맨은 악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곤경에 처하고 극복한다. 스파이더맨은 날렵하다. 말도 가볍다. 엑스맨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삐딱한 슈퍼히어로다. 아이언맨은 기계의 힘을 빌린 똑똑한 슈퍼 히어로다. 자신이 처한 처지와 그에 따른 심리에 따라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퍼히어로가 달라진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는 아이는 슈퍼맨을 선호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녀석들을 누군가 처벌해주기를 바라는 아이는 배트맨에 빠져든다. 산만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재빠른 스파이더맨이 마음에 든다. 자신이 남과 다르면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엑스맨을 선호한다. 심리적 투사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슈퍼히어로는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모두 다 자신의 수호신이 가장 강했으면 한다. 그러다 보니 슈퍼히어로 중에서 누가 제일 힘이 세느냐로 말싸움하게 된다. 우리가 마징가 제트와 태권브이 중에서 누가 더 센지 다투었듯이, 미국 아이들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를 가지고 말싸움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만약에 어린아이들에게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물어보면 많은 아이가 슈퍼맨이 이긴다고 할 것이다. 슈퍼맨은 천하무적이고 배트맨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큰 아이들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운다는 상황 자체가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두 슈퍼히어로가 아무 이유 없이 싸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두 슈퍼히어로는 인간의 간계에 빠져서 서로를 대적하게 된다. 어쩌다 이들은 이토록 어리석어진 것일까? 우리는 왜 서로 싸우는 걸까? 슈퍼맨은 만화에서 보여준 강력한 힘과 절대 선을 영화에서 보여주었다. 주 고객층은 아이들과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슈퍼맨4 최강의 적(1987)>까지 제작된 후 관객동원의 한계에 부닥쳤고 슈퍼맨 시리즈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이후 등장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었다. 배트맨이 아닌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잭 니콜슨의 조커 연기가 빛을 발했다. 그러면서 성인관객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여전히 선악의 구도는 명확했다. 배트맨 역시 <배트맨 4: 배트맨과 로빈>까지 아주 단순한 선악 구도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다 배트맨 캐릭터가 달라진 것은 <메멘토>같이 복잡한 영화를 감독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스(2005)>부터였다. 배트맨은 단순히 악을 쳐부수는 존재가 아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하는 상황으로 갈등한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배트맨이 악당에게 쫓기는 장면보다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이 더 많아졌다. 그러한 갈등은 <배트맨 다크나이트(2008)>에서 극대화 되어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로 종결된다. 슈퍼맨 역시 마찬가지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통해서 충격적인 데뷔를 하고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서 차별받고 박해받는 히어로를 다루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슈퍼맨 리턴스(2006)>에서 슈퍼맨은 지구인과 우주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300>의 감독 잭 스나이더는 <맨 오브 스틸(2013)>에서 그러한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러다 이번에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감독을 맡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슈퍼히어로는 점점 더 인간의 감정에 근접하게 되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나약해졌다. 어쩌면 타락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결점 슈퍼히어로들이 이토록 인간적으로 변화한 이유 중 하나는 관객들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캐릭터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었다. 초강대국에서 자라서 성인이 된 미국인의 세계관은 바보같이 단순했다. 선악이 지나칠 정도로 분명하다. 회색지대란 없다. 결론은 무조건 권선징악이고 당연히 미국인이 선이다. 그런데 월남전에서 패배하고, 911테러를 거치면서 미국인의 가치관은 변화했다. 과거와 같지 않다. 그들도 이제 두려워하고 흔들린다. 그러한 미국인의 가치관이 이제 슈퍼히어로 영화에 반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주 고객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슈퍼히어로 무비 대신 실사 만화에 정신을 쏟는다. 따라서 이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는 성인 관객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인이 공감할 캐릭터가 필요하다. 천하무적 무결점 슈퍼히어로는 비현실적이다. 인간적인 슈퍼히어로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슈퍼히어로들이 인간의 감정을 지니게 되었고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에 그들도 인간처럼 서로 싸우게 되었다. 과거에 슈퍼맨은 단순히 선하고 착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의 슈퍼맨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의 육체는 강인하지만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과거의 배트맨은 악을 쳐부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슈퍼맨을 투사의 대상으로 삼는다. 배트맨과 슈퍼맨, 때론 울고 싶은 사연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이 된 슈퍼맨과 배트맨의 심리를 살펴보자. 슈퍼맨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그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비난받아야 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다. 슈퍼맨은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그는 정의롭고 올바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슈퍼맨이 선을 행하는 이유는 단지 선해서가 아니다. 슈퍼맨은 사고로 인해서 부모를 잃었다. 그래서 입양가정에서 자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양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정체성의 혼란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낮은 자존감은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며 상승된다. 선행은 자존감 유지를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그는 선을 행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자기 존중감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은 영원히 움직이는 엔진과 같다. 그리고 그 엔진을 돌리는 연료는 선행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칭찬이다. 반대로 사람들의 비난은 그의 자아에 손상을 가져온다. 따라서 비난받는 것을 인내하지 못한다. 남을 돕는데 실패한데서 기인하는 죄책감이 더해지면 슈퍼맨의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테러를 막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 때문에 영화 속 슈퍼맨은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배트맨과의 싸움에서 드러나는 슈퍼맨의 감정은 신이 인간에 대해서 가지는 오만을 연상시킨다. 슈퍼맨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다. 슈퍼맨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마치 신이 강림하는 장면과 같다. 영화 속에서도 사람들이 슈퍼맨을 신처럼 숭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슈퍼맨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가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을 지배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의 힘은 신에 비견할 만하다. 그래서 그는 감히 인간 나부랭이인 배트맨이 싸움 거는 것에 분노한다. 배트맨이 악을 처벌하는 동기는 얼핏 보면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배트맨이 부모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 이유는 부모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죄책감으로 인해서 배트맨은 불행하다. 어쩌면 그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부모를 죽인 범죄자를 처벌하면,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악을 박멸하면 자신이 과거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악이 사라지면 배트맨이 과연 행복해질까? 배트맨은 트라우마에 계속 시달리는 인물이다. 여전히 또다시 공격당할까 또다시 위협받을까 두려워한다. 프로이트의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쥐 사나이(rat man/래트맨)’이다. 부르스 웨인은 어려서부터 박쥐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그는 박쥐의 모습을 하고 적을 응징한다. 그 이유는 뭘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배트맨이 박쥐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뭘까? 부모의 죽음에 대한 공포, 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박쥐라는 대상으로 전치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의식상에서는 박쥐를 두려워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박쥐와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배트맨 복장 그 자체가 그의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배트맨은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계속 스스로 확인시켜야만 한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악을 공격해야 한다. 악을 물리치면서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배트맨이 악을 공격하며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정의를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반동형성’이라고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용감한 척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당하면 그것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대하게 되면 트라우마가 재작동하고 불안해진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마주 대하게 되면서 배트맨은 불안과 공포에 압도된다. 그 대상이 선한 존재냐 악한 존재냐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그의 존재 자체가 자신을 취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자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인해서 위협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대상을 없애야 한다. 삶에는 반드시 악당이 필요하다 조커도 사라지고 베인도 사라지고 인간 악당이 모두 사라지면 배트맨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서 슈퍼맨이 선행을 먹고 살듯이 배트맨은 싸움을 먹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배트맨에게는 심리적으로도 새로운 적이 필요했고, 때마침 슈퍼맨이 등장했다. 슈퍼맨이 외계인을 쳐부수는 과정에서 도시가 파괴됐고, 배트맨은 그 일로 인해 자신의 건물이 무너지고 직원이 죽는 경험을 한다. 그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외계에서 온 악이었다.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선이다. 하지만 배트맨이 보기에 선이냐 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슈퍼맨과 외계 악당의 차이점보다는 파괴적인 힘을 가졌다는 둘의 공통점에 집중한다. 악당 역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맡았다. 그는 <아메리칸 울트라>에서 기억을 잃은 병맛 첩보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이번에 맡은 렉스 루터 역은 어떤 점에서 오텔로에서 이야고의 캐릭터와 유사하다. 배트맨과 슈퍼맨을 이간질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간질에 잘 넘어간다. 트라우마도 있고 정체성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둘 다 마음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슈퍼맨은 사고로 친부모를 잃었다. 배트맨의 친부모는 살인을 당해서 사망했다. 트라우마로 인해서 그들의 마음은 불안정하다. 그래서 그런지 슈퍼맨과 배트맨은 이중생활을 한다. 슈퍼맨은 평소에는 오히려 당하고 사는 숙맥이다. 유능하지도 못하다. 인간으로 지낼 때의 모습인 클라크는 슈퍼맨이었을 때의 완벽함과는 반대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즉 슈퍼맨은 초인과 범인으로 분리되어 있다. 배트맨은 현실에서 부와 명예를 지닌 완벽한 인간이다. 그는 낮에는 사업가이고 밤에는 폭력을 행사한다. 배트맨은 낮과 밤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의 자아는 비범함과 평범함, 용기와 소심함, 낮과 밤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반대되는 인격적 측면이 분리·통합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음속 분리된 틈을 파고드는 렉스 루터의 이간질에 슈퍼맨과 베트맨은 조정당한다. 그나마 이렇게 불완전한 두 남자를 중간에서 이어주는 존재가 원더우먼이다. 여자가 있어야 남자들은 화해한다. 두 슈퍼히어로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슈퍼우먼인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은 잊을 수 없는 존재다. 1970년대만 해도 검열이 있어서 TV에서 조금만 노출 장면이 나와도 잘리고는 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원더우먼의 아름다운 몸매는 검열이 되지 않았다. 린다 카터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주인공처럼 원더우먼 그 자체였다. 의 섹시한 이미지로 스타덤에 오른 갤 가돗의 원더우먼은 왠지 나에게 낯설었다. 영화 속에서의 고담은 어쩌면 미국의 매트로폴리스를 상징한다. 911 이후의 미국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처음에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은 누가 봐도 911을 연상시킨다. 911 이후에 미국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외부의 적을 아무리 쳐부숴도 내재한 저성장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어벤져스가 되었건 저스티스 리그가 되었던 이제 미국인들은 슈퍼히어로 하나만으로는 안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슈퍼 히어로 무리가 필요하다. 미국인들이 갈라져 싸우듯이 이제는 슈퍼히어로들끼리도 때때로 갈라져 싸운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 문화/예술
    2023-05-19
  • (칼럼) 복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널 기다리며>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의 주제는 복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복수에는 3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는 가족의 복수를 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친구 혹은 동료의 복수를 하는 경우다. 세 번째는 지고는 못 사는 이가 당한 만큼 되받아주는 경우다.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를 잃은 딸이 15년을 기다렸다가 복수를 한다.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복수혈전은 현실에 없다? 부모의 복수를 하는 자식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내가 제일 처음 보았던 복수극은 <네바다 스미스>라는 오래된 영화였다. 1966년에 제작되었으니 나보다 더 나이가 많다. 스티브 맥퀸이 어렸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인다. 저렇게 지독한 복수가 있다니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복적으로 충효에 대해서 학습을 받고 홍콩 무협 영화를 수도 없이 보면서 자식이 부모의 복수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스토리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부모의 죽음을 복수하는 자식이 끝없이 등장하는데 왜 신문이나 인터넷에는 자식이 부모의 복수를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뉴스가 없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실제 살인사건의 상당 부분은 치정에 얽혀서 일어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아내가 상대방 여자를,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이 상대방 남자를 죽이기도 한다. 의처증, 의부증 환자들은 배우자가 외도 근처에도 가지 않더라도 망상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때로는 헤어지자고 하는 연인을 죽이기도 한다. 또는 스토커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스토킹을 당하는 상대를 죽이기도 하고 경쟁자를 죽이면 연인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에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남녀관계를 제외하면 원한이 복수로 이어지는 경우란 거의 없다. 자식이 죽는 경우 부모가 끝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소송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살인을 통해 복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모가 죽었을 때 자식이 느끼는 분노는 그 강도가 훨씬 덜하다. 적당한 금액에 합의를 보면 그냥 잊는 경우도 많다. 더군다나 어려서 부모를 잃은 경우는 부모와의 유대감이 사실상 거의 없다. 복수할 의지나 힘도 없다. 부모 중에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 자식의 삶에 더욱 치명적이다. 위로해주는 이도 지켜주는 이도 없다. 아이는 심리적으로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벌거벗겨 버려진 상태다. 어머니가 없는 것과 비교하면 덜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것도 상당한 심리적 부재를 가져온다. 하지만 어머니가 충분히 따뜻하다면 아버지의 심리적 부재는 채워질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을 때 겪게 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환자들을 상담하게 되면 심리적 공허감이 상당하다. 인간에게는 나를 규정하는 기억이 있다. 치매가 생겨서 모든 기억을 잊더라도 끝까지 남은 기억들은 이름, 생일,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같은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인생 기억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있어서 처음 형성되는 인생 기억은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는”이다. 부모에 대한 인생 기억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기둥이 없는 것과 같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삶이 흔들린다. 복수를 꿈꾸기에는 너무나 허약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자식의 복수가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영화 속의 아버지와 실제의 아버지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완벽하고 자애롭다. 어머니가 부재한 상태에서 진심을 다해서 자녀를 돌본다. 부성과 모성이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의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거칠다. 피하고 싶은 존재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 아버지가 저렇다면 하면서 완벽한 아버지를 상상한다. 학대받는 아이 중에는 아버지가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아버지가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는 판타지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흔히 우리는 연애 상대로서의 이상형을 묻고는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 부모 이상형이 마음에 존재한다. 그런 이상형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러한 완벽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에는 부성과 모성이 결합된 완벽한 부모 이상형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등장한다. 현실의 아버지가 이상형 아버지 같았다면 아버지로 인해서 상처받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완벽한 이상형 아버지를 누군가 앗아간 것으로 설정한다. 아버지로 인해서 불행한 이들일수록 그러한 이상형 아버지를 죽인 이에 대해서 복수하는 주인공에게 공감이 더 가게 마련이다. 복수는 과거 회귀를 꿈꾼다 그리고 영화 속 복수는 과거의 행복한 순간으로 회귀하기 위한 심리적 도구이기도 하다. 심리적 방어기제 중 하나로 무효화라는 것이 있다. 내 인생에 벌어진 끔찍한 일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tvN 드라마 <시그널>을 보면 주인공들이 과거와 교신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사건을 다시 뒤바꿔 놓는다. 불행이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성형수술을 받는 이들 중에서도 옛날 얼굴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과거의 얼굴로 돌아가면 그때 같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무효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살인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 범인이 살아있는 동안은 마음속에서 살인사건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서 불행에 빠진 주인공들은 살인자를 죽이면 부모의 죽음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판타지를 지닌다. 부모를 죽인 자를 죽여야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긴다. 범인이 애초에 없었다면 살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범인을 어떻게든 죽여 버리고 싶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살인범을 죽이는 순간 환상은 깨어지고 더욱 커다란 공허함이 밀려오게 된다. 어쩌면 자살로만 감당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범인이 살아있는 한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서는 범인이 죽어야 한다. 범인을 죽인다고 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잊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범인이 죽지 않는 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부터 못 벗어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일단 범인을 죽인다. 하지만 복수를 하고도 여전히 트라우마로부터 못 벗어나는 경우 지옥 같은 삶이 이어진다. 원수가 죽는다고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행복한 인생이 되어야 원수를 잊을 수 있다. 영화 <널 기다리며> 속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의 복수를 시도한다. 희주(심은경 분)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대영(윤제문 분)은 동료의 죽음에 대해서, 기범(김성오 분)는 자신의 애인을 죽이고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친구에 대해서 복수한다. 그런데 이들 세 캐릭터를 보면서 나는 과거에 인간의 뇌를 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 뇌(뇌간), 감정을 담당하는 포유류 뇌(중뇌), 헌신을 담당하는 고차원 뇌 (대뇌피질)로 나누던 것이 떠올랐다. 기범(김성오 분)는 마치 파충류 같은 존재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그는 혀로 입을 핥는다. 그의 뱃가죽은 마치 파충류의 껍질 같다. 그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 본능에 방해되는 존재는 죽여 없앤다. 대영(윤제문 분)은 동료를 잃고 소리 내어 우는 한 마리 늑대 같다. 그는 무리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소중한 무리를 앗아간 이를 죽여서 복수해야 한다. 희주(심은경 분)는 복잡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갈등한다. 그녀가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다. 주지화(intellectualizaton)란 불편한 감정을 조절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추상적으로 사고하거나 일반화함으로써 감정적 갈등이나 내외적인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어기제다. 희주(심은경 분)가 기범(김성오 분)에게 쫓겨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어 달아난 후 “운동시간 끝”이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주지화다. 희주(심은경 분)가 <니체>의 철학적 경구를 되뇌는 것은 주지화를 통해서 갈등을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의 아포리즘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만약에 철학적 경구를 자막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관객들에게 더욱 강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세븐>에서 7가지 악에 대한 응징이 차례로 전개되듯이 복수가 전개되었다면 철학적 맛이 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심은경 분)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희주(심은경 분)가 아버지와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하고 딸기우유를 먹고 어린아이처럼 구는 것은 아버지가 사망한 나이에 심리적으로 고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 마음의 한 부분은 나약한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반면 살인자로서의 또 다른 내면이 존재한다. 이렇게 마음이 상반된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분리(splitting)라고 표현한다. 분리(splitting)가 더욱 심해지면 다중인격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다. 희주의 방을 보면 벽에 포스트잇, 바닥에 신문기사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집은 마음을 상징한다. 텅 빈 집은 텅 빈 마음을 의미한다. 복수를 제외하면 그녀의 마음은 텅 비었다. 복수만이 그녀가 살아가는 힘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그나마 그녀가 위로받는 것이 음악이다. 추상적인 클래식 음악이 그녀에게 최소한도의 따뜻함을 제공해 주는 대상물이다. 만약에 진단을 내린다면 그녀는 우울증 상태다. 그래서 온전히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원수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자 한다. 복수는 동시에 자살행위이기도 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만약에 희주가 하루에 한 알의 우울증 약을 한 달 복용했다면 70%의 확률로 그녀는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한 달 이후에도 그녀가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 경우 다른 항우울제로 바꿔서 하루에 한 알씩 한 달만 더 약을 복용했다면 또다시 70%의 확률로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복수를 꿈꾸는 경우 한 번 더 약을 바꿔서 한 달 더 복용했다면 또다시 50%의 확률로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매일 항우울제 한 알씩만 먹었더라면 3개월 이내에 95%의 확률로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복수를 만든 사람들 심은경, 윤제문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가장 크게 떠오른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김성오다. 그가 영화 속에서 드러낸 배는 잊을 수 없다. 진짜 무슨 악어가죽 같았다.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최민식 분),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분), <몬스터>의 태수(이민기분), <살인의뢰>에서의 조강천(박성웅 분)과 같은 그간 한국 영화에 등장한 악역 중 단연 최고였다. <케이프 피어>에서의 로버트 드니로 이래 최고의 살인마 연기였다. 리얼하다는 점에서는 최고였다. 김성오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아마도 인생 영화가 될 것 같다. 영화의 개봉 시기가 늦어지면서 영화에 출연할 때는 무명이었는데 유명해진 이들이 형사 중에서 눈에 띄었다. 우선 <응답하라 1998>에서 김정봉 역을 맡은 안재홍이 미숙한 형사 역을 완벽하게 했다. 그리고 tvN 드라마 <시그널>을 통해서 낯익은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검사외전>에서 황정민의 오른팔 역을 했던 김원해도 보인다. <시그널>에서 안치수 계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정해균은 이번에는 안 형사가 아닌 유 형사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감독이 직접 극본도 썼다. 감독이 자신의 극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본인의 영화이니까 본인이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런 장점은 시각적 효과에서 두드러진다. 희주 방의 노란 포스트잇 벽 그리고 신문지로 도배된 바닥. 희주가 건물 옥상에 있는 장면, 기범(김성오 분)과 정민수(오태경 분)의 대결 장면 등은 압권이다. 반면에 자신의 극본이기에 필요 이상으로 원작에 충실하고자 하는 면은 단점이다. 타인의 각본이었다면 감독은 더욱 냉정하게 손을 봤을 것이다. 영화는 촬영하면서 상황이 다르게 전개된다. 캐스팅을 하다 보면 원작의 남주가 여주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배우가 예상외로 좋은 연기를 펼쳐서 분량을 확 늘려야 하기도 한다. 만약에 자신의 각본이 아니었다면 좀 더 자유롭게 손봤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각본인 경우 스토리에 미련이 남게 되고 일관성에 집착하게 되면서 오히려 영화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 모홍진 감독은 <우리 동네>라는 잘 짜인 스릴러를 쓴 경험이 있다. 이번에 <널 기다리며>에도 만만치 않은 반전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홍진 감독의 경우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만만치 않게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 ‘자신이 쓴 각본이 아닌 다른 작가가 쓴 각본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더 발휘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복수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십 대에 대한 복수로 인해 갈등하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올리비에는 5년 전에 범죄로 아들을 잃고 이혼을 한 후 혼자 살아간다. 그는 직업훈련센터에서 10대들에게 목공을 가르친다. 그런데 하루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10대 범죄자인 프랜시스가 교육을 신청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는데 하필 그날 전처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해서 재혼하려 한다. 자신만 불행 속에 내버려졌다는 생각에 올리비에는 프랜시스를 교육생으로 받아들인다. 프랜시스는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가 올리비에라는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매일 직업훈련을 받는다. 프랜시스는 올리비에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자신의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하루는 올리비에가 프랜시스에게 어쩌다 감옥에 갔는지 묻는다. 프랜시스는 살인 때문에 갔다고 대답한다. “왜 어린아이를 죽였느냐”는 질문에 “차에서 라디오를 훔치려는데 아이가 뒤에 앉아 있어서 겁이 나서 목을 졸라 죽였다”고 대답한다. “후회하느냐”는 말에 프랜시스는 “감옥에서 5년이나 썩었으니까 후회한다”고 대답한다. 아이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 올리비에는 분노하게 된다. 낯선 목재 창고에서 올리비에는 프랜시스에게 네가 죽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알려준다. 프랜시스는 미친 듯이 달아나고 올리비에는 프랜시스를 잡아 쓰러뜨린 후 목을 조른다. 그러다 풀어준다. 그러고는 둘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목재를 함께 나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복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닌 열린 결말로 끝난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다르덴 형제 영화의 특징이다. 결론 없이 흘러가다 흐지부지되는 현실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 영화 같지 않은 영화로 감동을 준다는 것이 더욱 대단하다. 배우 올리비에 구르메는 아버지 올리비에 역으로 2002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복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해서 평생을 복수심에 사로잡혀 사는 환자를 대하면서 이렇게 기억에 사로잡혀 사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망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수하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 그냥 살다 보면 잊히게 마련이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 문화/예술
    2023-03-27
  • 생일의 인문학, 나라별 파티 음식과 세레모니
    1년의 시작은 새해 첫날이다. 사람의 시작은 생일이다. 태어난다는 것, 그것이 축복이든 재앙이든 그 시작점이 된 날은 특별하다. 해가 바뀌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 축하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또다시 한 사람의 주기가 시작된다. 세계의 생일 문화, 그 시작점과 의미에 대한 해석을 들어보자 한국의 생일, 환갑(還甲) 지금이야 한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높아져서 환갑의 의미가 퇴색했다. 해를 나누는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 만 60세가 되는 해이고, 과거에는 가장 큰 생일이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장수의 의미를 살릴 수 있고, 가족과 자손의 입장에서는 효를 다하고, 그 본분을 다하니 또한 좋은 의미의 생일이었다. 환갑잔치는 성대하면 성대할수록 좋다고 하여, 자식과 후손들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했으나, 현대에서는 그 의미와 규모 모두 찾아보기 힘들다. 재미있는 것은 먼 조선시대의 환갑 문화 중에 가족들이 부모에게 해주는 환갑잔치 이외에 각계각층의 원로를 우대하는 환갑 생일 기념이 있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스승의 환갑이 문하생과 제자들에 의해서 베풀어지고 예능계나 기술계·종교계, 그리고 특수집단(보부상·거지)에서는 지도자나 두목의 환갑이 사사자(師事者)·도제(徒弟)·계승자·추종자에 의해서 치러진다. 이런 경우의 비용은 각자의 출연금으로써 충당됐다고 한다. 정신적인 스승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그 권위와 모범이 되는 원로에 대한 존경심이 들어간 이러한 문화는 인상적이다. 사회 원로에 대한 자발적인 존경과 애정의 표시는 효율성만 강조하며 원로가 없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법도 하다. 독특한 생일 음식 중국에서는 생일에 먹는 길이가 긴 면을 장수면이라 하였는데, 그 길이만큼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어르신들의 생일에는 복숭아 모양의 ‘쇼우타오’라는 밀가루 음식을 주는데 이 역시 장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계란과 우유, 럼주, 소금으로 간을 한 반죽으로 구운 크레이프를 만든다. 이를 생일을 맞은 이가 다른 이의 접시에 정확히 올리면 부자가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는 풍습이 되어 새해 첫날과 생일날 행해지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모든 식구가 집에 모여 함께 생일을 즐긴다고 한다. 집에서 뷔페식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생일을 보낸다. 일종의 통돼지 바비큐라 볼 수 있는 ‘레쳔 가왈리 (Lechong Kawale)’라는 음식은 필리핀 사람들이 생일에 특별히 준비하는 음식이다. 가족과 공동체 소통의 문화를 중시하는 필리핀 생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일에 먹는 생일 케이크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이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일 케이크의 개발은 요리와 과자류의 커다란 진보를 이끌어 왔다. 이후 18세기 독일에서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해하기 힘든 생일 세리모니 스페인 사람들은 생일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들은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스페인에서는 “생일 축하한다”라는 축하의 말과 함께 생일자의 귀를 잡아당기는 풍습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는데, 나이만큼 귀를 잡아당겨야 한다고 하니, 노인학대로 비칠 법도 하다. 벨기에의 생일에도 특이한 세리머니가 있다. 생일을 맞이한 아이는 친구들에게 과자 등의 작은 선물을 준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 또는 선생님은 아이에게 종이 왕관을 만들어서 씌워준다. 그 왕관에는 나이만큼 꽃이나 새의 깃 장식이 되어 있다. 왕관을 쓴 아이에게 축하 노래를 불러준 후에 높이 안아 올리는데 그 또한 나이의 수만큼 되풀이한다고 한다. 남미의 엘살바도르에서는 생일날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커다란 종이 인형을 만들어 그 안에 사탕을 넣어 둔다. 그리고 생일인 아이가 종이 인형을 마구 부수어서 안에 있는 사탕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친구 초대의 의미 교황 프란치스코는 77세 생일에 4명의 친구를 초대했다. 신의 대리자라 불리며,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교황에게 선택받은 4명의 친구는 누구일까? 이들은 로마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의 노숙인 4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주인과 함께 교황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파티가 벌어지고, 노숙인 3명은 교황에게 해바라기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신은 우리의 사랑을 보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특히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4월 24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한 강론 中 그 무엇을 먹고 어떤 세리머니를 하든 생일은 즐겁다. 교황이 만났던 4명의 노숙인과 한 마리의 반려견, 귀를 잡아당기는 스페인의 세리머니, 사회 원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했던 조선시대 환갑문화가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 인생의 시작이 공동체를 이루는 계기가 되고, 문화를 만들어 사랑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생일 문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참고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라이센스 구매
    • 문화/예술
    2023-03-02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낯선 화가, 변월룡
    그는 1916년 연해주 쉬코도프스키의 유랑촌에서 태어났다. 오랜 시간 러시아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53년 한국에 왔다. 민족 반역자로 불리어 다시 한국에 올 수 없었고 평생 고국을 그리워한 그가 한국에 머문 시간은 불과 1년 3개월뿐이다. 그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소나무, 금강산, 그리고 민족의 모습이었다. 고국의 모습을 담다 변월룡은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소련정부의 파견원으로서 북한의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고 그곳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판문점에 들렀을 때 포로 교환의 현장을 보게 된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한국의 첫인상이 전쟁 직후의 황폐함이었다. 전쟁의 희생양이 된 고국의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소련과 북한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소련 국적의 그가 다시 고국에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평생 고국을 그리워했지만, 다시 올 수는 없었던 화가 변월룡.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고국의 작품들은 더 쓸쓸하게 보인다. 변월룡(Пен Варлен) 1916-1990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 문화/예술
    2023-02-22
  • 10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영화
    알고 보면 더 무서운 현실의 로맨스들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할 때 사랑 영화가 당긴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구원받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선 드물지만, 영화에선 남녀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절절한 로맨스를 완성한다. 과연 제정신일까? 본지의 시네마칼럼을 통해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온 최명기 박사와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파헤쳐봤다.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는 깔끔하고 밝아서 느낌이 좋았다. 각진 직선과 사각의 프레임들이 교차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안쪽 상담실로 안내받았을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천 장은 될 법한 음악 CD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DVD 컬렉션. 소량의 LP판과 턴테이블이 다가올 인터뷰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해주었다. 미소를 띠면서 인사하는 최명기 박사의 시네마테라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Q 음악, 영화 컬렉션이 대단하다. 환자와의 상담 시 활용되는지? 개인적으로 틈틈이 모은 것인데, 나에게 있어서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내방하는 환자들과 상담하면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증상에 맞는 영화들이 있다. 진료나 상담 중에 내용을 설명하며 권하고, 그다음 진료 때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Q 시네마테라피가 임상적으로 환자분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신적으로 정화되는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영화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감정을 몰아가는 방법에선 탁월하다. 시각적, 청각적인 측면에서 전달도 잘되고… 물론 시네마테라피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맞춰가며 같이 몰입하고 소통하면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감과 보고 나서의 행복한 여운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테라피가 아니겠는가? Q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그런데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들도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남들도 싫어하기 마련이다. 자기에게 정말 딱 맞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대부분 남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필이 꽂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Q 그래도 영화에서는 좀 비호감적인 경우에도 사랑에 빠지곤 한다. 캐릭터가 그렇긴 해도 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용모에 대한 부분은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문화적 영향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때는 주로 생산성에 맞춰 상대를 본다고 한다. 원시시대 때부터 남자들이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가슴을 보고 나이를 가늠했다고 한다. 가슴이 처졌나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말이다.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머릿결의 영양 상태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를 볼 때 10분 안에 결정한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천 년의 역사가 깔려있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예쁘다는 것은 밸런스가 제대로 된 것이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볼 때 용모도 중요하지만 이미 들은 평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본 사랑도 있지만, 귀로 들은 사랑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역시 용모가 중요하다. 평판은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하다보면 우울증이나 조증, 정신분열증을 앓고 계신 분들이 사랑에 잘 빠진다. 아무래도 불안하고 외로우니까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애정망상이 있는 거다. 또 경계성인격장애라고 하는 증상이 있는데, 이런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참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사랑에 빠지게 된다. Q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로맨스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다들 속기 쉬운 영화다. 이 영화를 굉장히 수준 높은 영화라고 하는데 사실 전형적인 구애영화다. 동물이나 곤충들이 관계를 맺기 전에 춤을 추고 구애를 하듯이, 이 영화도 남녀가 밤새 밀고 당기며 사랑을 확인하려 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결국 두 주인공 남녀가 잤느냐 하는 거다. 영화는 두 남녀가 관계를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서로 한방이 부족한 거다. Q 하지만 에디터가 <비포 선라이즈>를 좋게 본 것은 남녀 사이에 관계 없이도 멋지게 대화하고 밀당하며 감성을 소통해내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낯선 곳에서의 남녀 사이라는 환경도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관계가 관여되지 않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투사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내용은 남녀 간의 구애인데, 그것을 순수한 사랑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게 재미있다. Q 그럴 수도 있겠다. 마지막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영화 마지막에 햇빛에 의해 두 주인공이 다녔던 비엔나의 장소들이 다 드러나는데, 그 시퀀스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토록 로맨틱한 장소들도 결국 사람 사는 현실의 공간이란 점이 서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말이다.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도 재미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첫눈에 반해 사랑하다 징글징글한 그 사랑을 회피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는 게 큰 설정이다. 그런데 그 이후 두 남녀가 다시 만났을 때 또 사랑하게 된다. 기억을 지워도 서로를 사랑했던 느낌이나 이런 것은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추억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심리학에서는 뇌에 남아서 영향을 준다고 본다. 기억이 남는다는 것은 완벽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볼 때 <이터널 선샤인> 속 커플은 매우 역설적이다. 서로가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기억을 지우는데, 사실 서로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 편이 더 좋다. 기억을 지우지 않아야 서로에 대한 안 좋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거다(웃음). 영화 속 커플은 기억을 지우는 순간 다시 만나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Q 위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안 좋은 기억은 이별할 때 꼭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두 영화는 청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혹시 불륜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가? 다이안 레인의 <언페이스풀>이라는 영화가 있다. 행복한 유부녀가 어느 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다. 나라마다 외도 통계라는 것이 있다. 보통 남자의 외도율이 40% 정도 된다고 하고, 여성의 외도율인 20% 정도 된다고 한다. 외도는 선천적인 영향도 있는데, 5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현실의 배우자와의 관계가 숨 막혀 참을 수 없어 외도를 하는 타입이다. 부부지만 서로 마음의 거리가 다르다. 두 번째는 환상형인데 자신의 삶이 잘 안 풀리면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다. 세 번째는 두 집 살림 형인데 이 타입은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내와 헤어지면 바람 피우는 여자와 재혼할 것 같지만, 다시 아내와 같은 여자와 재혼한다. 넷째는 중독자형인데, 이런 경우는 부인이 맞춰줄 수 없으니까 밖에서 해결하는 거다. 끝으로 여자가 주축이 되는 외도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우울증이 있는 경우이고 <언페이스풀> 같은 영화가 그런 경우다. 바람이 심한 날, 다이안 레인의 우울한 마음이 든 외도로 연결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Q 그런데 현실적으로 연애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감정만으로 어려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맞다. 보통,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는 예쁘고 성격 좋으면 바로 사랑에 빠진다. 당연히 못생기고 성격 안 좋으면 싫어한다. 둘 중의 하나가 좋고 하나가 안 좋으면 갈등하면서 고민하게 된다. 여자도 남자의 재력과 성격 둘을 가지고 판단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는 신의 사랑과 유사하기에 더 빠져들고 동일시한다. 사람들은 결국 폭력영화나 사랑영화, 둘 중의 하나를 보는 것 같다. 폭력은 억지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카타르시스로 푸는 것이고 사랑영화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환상을 주는 이유가 크다. Q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고 들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도 그렇고,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대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를 보통 심리학적으로는 ‘망상’이라고 한다. 약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헷갈리는 것이다. 이병헌의 경우는 대상이 한 번 바뀌지만, 한효주의 대상은 매일 바뀌는 경우다. <뷰티 인사이트>에서 한효주가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을 영화의 처음이라고 생각하면 위의 해석이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과대망상이 있으면, 사물을 바로 보기 힘들고 점차 본래의 형태를 잊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이 시력을 잃으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잊게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이 변형되어 가는 것이다. Q 듣고 보니, 현실에서의 사랑은 쉽지 않다. 거기에 영화를 보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꾸고 싶어 한다. 현실을 뭉개고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대상과 마음껏 울고 웃고 대리만족을 누리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Q 영화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금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더욱더 영화에 집착했었다. 그것은 내가 굉장히 이성적인 인간이라 감성을 다루는 영화를 통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환자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언론에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말이다.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
    • 문화/예술
    2023-02-08
  • (칼럼) 통치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 내부자들
    영화 <내부자들>은 개봉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과 맞물리기도 했고,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와 영화의 짜임새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진짜 흥행 요인은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신분상승과 그 덧없음을 통쾌하게 묘사해낸 때문이 아닐까? 본격 정치영화라기보다는 불황과 사회불안이라는 양날의 검에 당하고 있는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말도 많고 비능률적인 것 같지만 새로운 인재가 지속적으로 지배계층에 편입되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예전에 중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참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이 있었다. 제국의 전성기가 100년이 넘지 않는 것이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했지만, 진시황제가 사망한 후부터 삽시간에 몰락한다.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한 수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경우, 국가의 수명은 오래갔지만, 그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원나라 역시 칭기즈칸이 엄청난 영토를 확보했지만, 전성기는 100년을 넘지 않았다. 청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그런데 국가의 몰락을 보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간신이다. 권모술수에 능한 간신들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면서 몰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이들은 통치 엘리트에서 배제된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파레토는 엘리트의 타락을 통해서 국가의 존망을 설명한다. 통치 엘리트와 비통치 엘리트 파레토는 모든 사회는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대통령후보, 재벌회장, 신문사주간, 검사는 엘리트다. 그들과 비교할 때 일반시민들은 비엘리트다. 파레토는 노력만으로 엘리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타고난 정신적, 심리적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현재 엘리트의 자질이 있다고 해서 그 자식들, 그 손자들도 엘리트의 자질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엘리트는 자신의 자녀가 엘리트의 자질이 없더라도 지위를 유지하게끔 폐쇄적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질이 있는 비엘리트가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차단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대중을 경멸한다. <내부자들>에서 이강희(백윤식 분)가 대중은 개, 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이 말이다. 그런데 엘리트가 순환되지 못하고 자질이 없는 무늬만 엘리트가 지위를 유지하다 보면 통치능력이 저하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런데 파레토는 사회를 엘리트 계급과 비엘리트 계급(대중)으로 나눈 후 엘리트 계급을 또다시 통치 엘리트와 비통치 엘리트로 구분한다. 통치 엘리트는 국가의 통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대선후보 장필우(이경영 분)와 재벌회장 오회장(김홍파 분)은 통치 엘리트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강희(백윤식 분)는 그들을 위해서 일을 꾸미지만, 아직은 비통치 엘리트에 불과하다. 그는 언론인이라는 비통치 엘리트에서 총리, 장관 같은 통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 온갖 비열한 일을 도모한다. 검사인 우장훈(조승우 분) 역시 그러하다. 그는 경찰이라는 비엘리트였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었기에 경찰로서는 엘리트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검사가 되어 엘리트 그룹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족보가 없기 때문에 통치 엘리트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대선후보 장필우(이경영 분)라는 통치 엘리트를 잡아서 자신이 통치 엘리트가 되는 기반을 쌓고자 한다. 장필우(이경영 분)가 술자리에서 자신이 젊어서 어떻게 부패한 고위 선배 검사를 체포했는지 얘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장필우(이경영 분) 역시 기존의 통치 엘리트를 공격하면서 새로운 통치 엘리트 자리에 오른 것이다. 통치 엘리트가 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론 엘리트 자질이 있는 이들이 통치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면 분노가 누적된다. 그들은 대중을 선동한다. 그들이 노조의 지도자가 되면 경영진과 싸우게 된다. 진입이 차단되어서 엘리트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능력은 엘리트보다 못할 것이 없다. 좋은 집에 태어나서 자질이 없어도 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는 오히려 비엘리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엘리트의 자질이 있음에도 엘리트가 될 수 없는 이들은 대중을 위해서 반항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 대중은 명분일 뿐이다. 사실은 자신이 통치 엘리트가 되고 싶은 것이다. 우장훈(조승우 분)이 그러하다. 때로는 엘리트가 되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안상구(이병헌 분)가 그러하다. 잔인하고 공격적이지만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이 가난하게 자란 그는 엘리트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범죄자가 된다. 만약에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의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파레토의 엘리트 순환론에 따르면 능력이 없는 엘리트 계층이 능력 있는 엘리트로 교체되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 러시아의 절대왕조가 무너진 것도 지배계층이 무능력하고 부패하였는데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아서다. 민주주의 국가는 말도 많고 비능률적인 것 같지만 새로운 인재가 지속적으로 지배계층에 편입되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반면에 독재국가는 일시에 무너진다. 시리아가 무너진 후 IS가 지배하게 된 것 같이 말이다. <군도>와 <내부자들>의 평행이론 나는 내부자들을 보면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가 떠올랐다. 군도에서 조윤(강동원 분)은 지주인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다. 그는 엘리트 계층에 속하기 위해서 무관이 된다. 하지만 무관이라는 한계, 서자라는 한계 때문에 통치 엘리트가 되지 못한다. 그는 통치 엘리트가 되기 위한 수법을 바꾼다.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땅을 빼앗은 후 그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려서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가 된다. <내부자들>에서 오회장(김홍파 분)이 장필우(이경영 분)와 이강희(백윤식 분)를 마음대로 부리듯이,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조윤(강동원 분)이 마을수령과 관군을 마음대로 부린다. 그런데 <내부자들>에서는 엘리트-비엘리트(대중)간의 기본적인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장훈(조승우 분)이 무능력하고 부패한 엘리트 장필우(이경영 분), 오회장(김홍파 분), 이강희(백윤식 분)를 제거한다. 그들이 제거된 자리를 보다 나은 다른 엘리트가 차지하면서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엘리트-비엘리트 간의 순환이 차단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란이 일어난다. 땡추(이경영 분)는 지적능력이 있고 계획력이 있다. 두목인 대호(이성민 분)는 리더십이 있다. <내부자>에서 조폭 두목 안상구(이병헌 분)가 그러했듯이 대호 역시 통치체제에 편입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을 이끌고 반란을 시도한다. 반란이 성공하면 그들이 통치 엘리트가 될 것이다. <내부자들>과 <군도: 민란의 시대> 사이에는 이렇게 묘한 평형이론이 펼쳐진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두 영화 모두 제작과정에 쇼박스가 관여하고 있다. 현실적이고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 <내부자들> 내부에 들어가서 상대방을 방심하게 한 상태에서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은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진다. <성난 변호사>도 그러했다. <내부자들>에 미래자동차 오회장이 존재했듯이 <성난 변호사>에는 제약그룹 조회장(장현성 분)이 등장을 한다. <내부자들>에는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이 등장하고 <성난 변호사>에는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등장한다. 둘 다 법조인이다. <내부자들>에서는 우장훈(조승우 분)이 내부고발을 한 후 검사를 포기하고 변호사로 개업한다. <성난 변호사>에서는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내부고발을 한 후 로펌에서 쫓겨나 변호사로 개업한다. <내부자들>에서는 방계장(조재윤 분)이 검사를 돕고, <성난 변호사>에서는 박사무장(임원희 분)이 변호사를 돕는다. 누가 주체가 되어서 계획을 만드는가는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억울하게 갇힌 범죄자가 존재한다. <내부자들>에서는 조폭 두목 안상구(이병헌 분)가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으로 하여금 내부에 침투하도록 계획한다. <성난 변호사>에서는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억울하게 갇힌 경호 직원 김정환(최재웅 분)에게 자신의 내부 침투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두 영화는 플롯 상에서는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부자들>의 캐릭터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치밀하다. 거기에 영화 완성도의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것이다. <성난변호사>는 변호성(이선균 분) VS 조회장(장현성 분)이 단순한 선악 구도로 대결한다. 그런데 <내부자들>에서는 캐릭터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재계, 정계, 언론계, 세 개의 악의 축을 대표하는 세 명이 등장한다. 그들이 추구하는바, 처한 입장은 같은 듯 다르다. 중간에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언론주간 이강희(백윤식 분)가 등장하는데 백윤식이 최고의 명연기를 펼친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측으로는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과 안상구(이병헌 분) 두 명이 등장한다.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의 동기 중 하나는 ‘출세’다. 또 다른 동기는 자신의 야망을 좌절시키는 파워 엘리트 체제에 대한 ‘울분’이다. 안상구(이병헌 분)의 동기는 ‘개인적 복수’다. 이렇게 현실적이면서 잘 짜인 캐릭터를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연기한다. 영화를 빛낸 배우들의 캐미 영화 <타짜>(2006)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백윤식과 조승우는 <내부자들>에서는 적으로 만난다. 그런데 평경장과 고니였을 때와는 또 다른 캐미를 보여준다. 우장훈(조승우 분)이 이강희(백윤식 분)를 심문하는 장면은 <내부자들>의 모든 주제가 드러나는 명장면이다. “보여진다”와 “매우 보여진다”를 가지고 하는 수사학적 대화는 백윤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명연기다. 이병헌의 복수 연기는 과거에 <달콤한 인생(2005)>에서 두목에게 버림받은 조폭 선우가 펼쳤던 액션복수에 드라마 <올인>에서 김인하가 펼친 지적복수를 합친 연기였다. 액션과 성격표현을 동시에 하는 배우란 영화계에서 확실히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거의 개근상을 찍듯이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이경영이 위선적인 정치인 역할을 깔끔하게 연기한다. 전라노출 연기를 마다치 않는 열정을 보인다. 그리고 영화계 개근상에 도전하는 또 다른 배우가 있으니 이병헌의 지시를 받아서 작전하다가 적발되어 죽을 고생을 한 박종팔 사장 역할을 한 배성우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나열하면 <베테랑>, <특종: 량첸살인기>, <더 폰>, <오피스>, <빅 매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의 한수>, <인간중독>, <몬스터> 등등이다. 이쯤 되면 인간이 아니다. 로봇이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는 스케줄이다. 어쩌면 아바타가 동시에 여러 영화에서 연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본다.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천만 배우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영화의 뿌리는 그리스 비극 정치영화의 뿌리를 거슬러 가면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지금에 와서 보면 분장이며 무대부터 현재와 관련이 없는 과거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보았다고 가정하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흥분하고 슬퍼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역시 정치가 가장 주된 소재다. <햄릿>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당한 왕자의 복수극이다. <오셀로>는 전쟁에서 거듭된 승리를 거둔 비엘리트 무어인이 장군이 되면서 귀족의 딸과 결혼해서 통치엘리트가 되었다가 무너져 내리는 스토리다. 맥베스는 왕족이 아닌 이가 왕위를 찬탈하는 쿠데타 영화다. 그동안 로만 폴란스키, 구로자와 아키라와 같은 거장의 손길을 거쳐서 영화화되었다. 최근에는 저스틴 커젤 감독,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엘리자베스 데비키, 숀 해리스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개봉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기반으로 한 영화 중에서 <리처드 3세>는 시대배경을 1930년대 영국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안 맥컬런이 독재자 리처드 3세 역을 맡고 아네트 베닝이 엘리자베스 여왕역을 맡았다. 비통치 엘리트 리처드 3세가 권모술수를 통해서 왕위에 올랐다가 비엘리트인 민중 리치몬드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맡는다. 기억에 남는 정치영화의 고전 쿠데타를 다룬 현대영화로는 <파워 플레이>가 기억에 남는다. 쿠데타 입문서(Coup d'État: A Practical Handbook. 1968)라는 전문서적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Power Play>(1978)에는 정권을 잡고자 하는 3명이 등장하는데 명배우 피터 오틀(Peter O'Toole), 데이빗 헤밍스(David Hemmings), 도널드 플레젠스(Donald Pleasence)가 각각 주연을 맡았다. 누가 과연 승자가 될지 예측 불가능한 파워게임이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반전이 끝내준다. 쿠데타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못하다가 김영삼 정부 때 국내 개봉이 되었다. 군사정권의 쿠데타 주체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면서 개봉 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프랑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는 1939년에 개봉한 정치영화의 고전이다. 영화는 워싱턴 정치권을 풍자한다. 상원의원이 임기 중 숨을 거두자 주지사가 갑작스럽게 후임자를 물색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용하기 편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정치라고는 모르는 소년단 지도자 제퍼슨 스미스를 상원의원으로 지명한다. 워싱턴의 기존 국회의원들은 대놓고 스미스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는 불의에 맞서 자신의 법안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의회에서 24시간 의회 발언을 하다가 쓰러진다. 필자는 정치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유럽 영화 중에서는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가 대표적인 정치영화다.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정권이 영화의 배경이다. 파시스트가 되어서 권력에 접근하던 주인공이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몰락하는 내용이다. 통치와 민중 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는 <당통>도 잊을 수 없다. 프랑스 대혁명이 배경이다.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당통역을 맡았다. 절대왕정이 무너진 후 누가 통치를 할 것인가를 두고 혼란이 벌어진다. 로베스피에르는 최하계층을 등에 업고 공포정치를 펼치려고 하고, 당통은 부르주아의 지지를 받으면서 관용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당통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민중이 공포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되면서 로베스피에르도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비뚤어진 정치판, 짐승의 역사 국내에서는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정치영화는 터부시되던 소재였다. 유신정권 치하에서는 현 정권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암시되면 상영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감독과 배우가 곤욕을 치르고는 했다. <서울무지개: 1989>는 그런 점에서 정치권을 부정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였다. 유라(강리나 분)는 스타가 되고자 하는 배우지망생이다. 권력이 있는 어르신이 스폰서가 되면서 유라(강리나 분)는 스타가 된다. 그런데 어르신은 그녀의 모든 생활을 통제한다. 그런 생활로부터 탈출하고자한 유라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그 이후 김현명 감독, 정보석, 이영하 주연의 <서울의 눈물>을 비롯한 정치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영화 <내부자들>의 영어 제목은 <Indise men>이다. ‘내부자 고발’이라고 할 때 쓰이는 의미에서의 ‘내부자’다. 하지만 내부자들이라고 하니까 단수가 복수가 되면서 또 다른 의미가 연상된다. ‘외부자들은 모르는 정보를 내부자들은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부자들끼리 권력을 나누고, 내부자들끼리 이익을 나눈다. 파워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들은 이너서클(inner circle)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너서클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국민들은 절망한다. 그러다 보니 <암살>, <베테랑>과 같이 이너서클을 비판하고 복수하는 영화가 성공하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헬조선”에 대한 분노를 카타르시스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매트릭스> 역시 변형된 정치영화다. 내부자들이 외계인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정치투쟁 하는 대신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파워엘리트들은 본인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항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고 똑똑한 주인공도 결국 끝없이 밀려오는 좀비들을 이기지 못하듯이 대중의 힘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마르크스는 정치에 있어서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얘기하느냐”를 봐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구속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둔한 엘리트의 생각보다 국민은 항상 더 현명하고 강하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정신과전문의,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저서 <시네마테라피>, <걱정도 습관이다>
    • 문화/예술
    2023-02-07
  • 흑백 속 담백한 사진의 멋스러움, 천재 사진가 허브릿츠
    그의 사진은 늘 흑백 속에 있다. 이 무채색 사진들은 담백하며 절제미가 돋보인다. 화려하기보단 깨끗한 허브릿츠의 사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사진들은 조용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1952년, 허브릿츠는 로스앤젤레스 브랜우드에서 가구사업을 하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배우 스티브 맥퀸의 옆집에 살면서 여러 배우와 친분을 맺었다. 바드대학에서 경제학과 미술학을 전공한 후 아버지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중, 우연히 여행에서 친구를 찍은 사진이 패션 매거진들에 실리면서 정식 사진가가 된다. 그리고 친구였던 리차드 기어는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허브릿츠는 보그, 엘르, 인터뷰, 하퍼스 바자 등 다양한 패션 매거진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돈나, 마이클 잭슨 등의 사진을 찍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그 후 명품 브랜드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약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가 된다. 이후 에이즈에 걸렸던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2002년, 5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신체를 예술로 끌어올린 20세기 최고의 패션 사진가 천재 사진가 허브릿츠. 스타들의 사진부터 명품 패션 화보, 특히 신체를 소재로 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는 르네상스와 그리스·로마시대의 영향을 받아 사람의 몸을 조각상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허브릿츠는 사람의 신체를 예술의 한 분야로 끌어올렸다. 세기의 아이콘을 만드는 천재 사진가 배우 리차드 기어부터 그와 함께 작업했던 작품들의 배우는 스타를 넘어 아이콘이 되었고, 많은 스타가 그와의 작업을 꿈꿨다. 명품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샤넬, 베르사체, 캘빈클라인, 발렌티노, 조르지오아르마니 등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다양한 뮤직비디오 역시 연출했다. 마돈나, 크리스 이삭, 브리트니 스피어스, 머라이어 캐리 등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클래식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시대의 감각을 한 작품에 담아낸 천재 사진가 그의 작품들은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정돈된 느낌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들의 사진이지만, 사진 속에서 스타 외에 다른 무엇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침착하고 세련됐다. 사진제공 사진기획전문회사 디투씨
    • 문화/예술
    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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